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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르포]"원장 비리 파면, 1년간 몰랐다" 망연자실한 '환희유치원'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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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비로 성인용품·루이비통 산 유치원 원장
유치원서 달아난 뒤 설립자로서 여전히 영향력 행사
남겨진 아이들…80% 정상 등원
학부모 "뒷수습도 우리 몫" 분통

원장의 교비 유용으로 파문을 일으킨 경기도 화성시 ‘환희유치원’.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4층 건물에 교사 18명이 근무하며 원아 317명을 돌본다. 과거 원장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명품을 사고 아파트 관리금을 낸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공개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16일 오전 찾은 환희 유치원에서는 평소처럼 "까르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바깥 분위기는 달랐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표정은 대조적으로 어두웠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모는 "계속 등원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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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기도 화성시 환희유치원(오른쪽 건물)의 수업은 평소와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유치원 원아 80%가량이 정상 등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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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유치원을 옮길 수 없는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동탄신도시는 아이를 달리 맡길 곳이 드물다. 이날 6살 아들을 환희 유치원에 등원시킨 학부모 서봉기(39)씨는 "아들이 환희 유치원에 다니기 위해 8개월을 대기했는데, 어떻게 지금 당장 유치원을 옮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근처에서 만난 주민들은 "동탄은 젊은 부부가 모여사는 곳이라, 유치원에 빈 자리가 없다"고 했다.

오후 3시 하원시간이 되자 유치원 안쪽에서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웃으면서 달려 나왔다. 5살 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서는 김모(37)씨는 "아이들한테 쓸 돈으로 ‘장난질’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교비로 노래방에서 놀던 원장, 학부모 몰려오자 구급차로 달아나
환희유치원의 비리가 알려진 것은 지난 11일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13~2017년까지 시·도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1878개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환희 유치원은 이 과정에서 실제 원명(名)이 드러났다.

교육청 감사결과에 따르면 유치원 설립자 겸 원장 김 모씨는 정부에서 받은 누리과정 지원금 7원억으로 성인용품, 루이비통 가방을 사들였다. 이 돈으로 노래방에서 놀고, 숙박업소를 이용하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비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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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유치원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모임’ 카카오톡 대화방에선 학부모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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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742명은 단체대화방(단톡방)을 만들었다. 이 대화방에서는 "이제는 유치원 안 보내겠다" "애들이 도대체 뭘 보고 배우겠느냐" "(정부지원금 외에)유치원비는 어디다가 썼는지 궁금하다" 울분에 찬 글들이 분(分) 단위로 올라오고 있다.

학부모들의 분노는 사립유치원 ‘갑질’을 겨누고 있다. 이날 만난 동탄신도시 학부모들에 따르면 이 지역 사립 유치원 20곳 가운데 절반가량이 내달 10일에 일제히 입학설명회를 연다. 학부모들은 이를 유치원 선택권을 제한하는 ‘담합행위’로 의심하고 있다.

단톡방에서 한 동탄 학부모는 "유치원 원장들끼리 굳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입학설명회를 열기로 한 것은 갑질"이라고 썼다. 현재 동탄신도시 학부모들은 유치원 입학설명회 보이콧을 논의하고 있다.

◇"환희 유치원장 교육철학 명확하다고?" 학부모 분통
"환희유치원 원장은 교육철학이 명확하다." "원장은 교직원들과 대화, 협력하며 민주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교육부가 내놓은 환희유치원 평가 결과서에 적힌 내용이다.

교육청 감사로 비리가 드러나면서 원장은 지난해 7월 파면 조치를 받았지만, 그 이후 원장 자리를 공석(空席)으로 두고 자신은 총괄부장으로 지내면서 사실상 유치원을 운영해 왔다. 교육부가 원장의 비리를 따로 알리지 않아, 학부모 누구도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 교육당국은 김 원장의 ‘편법 운영’은 인지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지난 11일 교육부 국정감사 이후에야 "그 유치원이 내 아이가 다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환희유치원 학부모들은 지난 14일 이 유치원에 항의 방문했다. 당시 김씨는 미리 준비한 구급차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설립자인 그는 여전히 유치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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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설립자이기도 한 김씨는 현행법상 추가 징계가 불가능하다. 경기도교육청 측은 "(우리가 아닌)교육부 차원의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당국이 팔짱 낀 사이, 뒷수습은 학부모 몫이다. 환희유치원 학부모들은 지난 15일부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 행동에 나섰다. 비대위는 원장 김씨가 누리과정 지원금 외에도 급식비·교사 인건비에도 손을 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 사건 이전에도 아이들의 식사가 부실했다"면서 "식자재 유통과정을 공개하고, 교사들의 처우 개선도 유치원 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오는 17일 오후 8시 환희 유치원 강당에서 설립자 일가(一家)를 면담할 예정이다. 환희유치원 비대위 측은 이 자리에서 유치원 측에 개선 요구사항을 문서로 전달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할 계획이다.

[화성=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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