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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아침햇발]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 고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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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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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논설위원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로마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난다. 대통령의 교황 면담은 과거에도 주목도 높은 뉴스거리였지만, 이번 만남에 쏠리는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교황 방북’을 제안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흔쾌히 초청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교황 방북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로 볼 때도 그렇거니와, 교황의 이름에 담긴 뜻으로 보아도 기대를 품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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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13일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청은 새 교황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발표했다. 전임 교황 가운데 아무도 쓴 적이 없는 ‘낯선’ 이름을 듣고 가톨릭 세계는 어리둥절했다. 사흘 뒤 새 교황은 자신의 이름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은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알려져 있다.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을 방탕하게 보내던 프란치스코는 몇 차례 삶의 위기를 겪은 뒤 통회하고 새사람으로 태어났다.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나병환자 같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 속으로 들어갔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콘클라베 투표에서 새 교황으로 결정된 순간, 옆자리의 추기경이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떠올렸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따라붙는 또다른 이름은 ‘평화의 사도’다. 젊은 날 ‘명예와 무용의 중세 기사도’에 빠졌던 프란치스코는 화려한 무구를 갖추고 전쟁에 나갔다가 붙잡혀 1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그러고도 기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전쟁터로 향하던 중 하늘의 음성을 듣고 무구를 버렸다. 평화의 일꾼으로 거듭난 프란치스코는 이집트로 가서 십자군전쟁 중단을 호소했고 그곳에서 술탄을 직접 만나 종교 간 대화를 시도했다. 그 이력을 기억하고 있었을 새 교황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지난 세월 일어난 많은 전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 평화를 말한 분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대로 새 교황은 즉위 이후 분란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방문했고, 콜롬비아 내전의 종식을 중재했으며,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인 수교를 지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도 끊이지 않고 관심을 보였다. 프란치스코의 평화 정신을 이어받은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할 기회를 뿌리칠 이유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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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 집무실 벽에는 성화 <매듭을 푸는 성모 마리아>가 걸려 있다. 1986년 독일 유학 중이던 베르골리오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 성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뒷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이 성화가 새겨진 잔을 선물하기도 했다. 갈등·분열·증오의 매듭을 푸는 신의 일꾼이 되어달라는 뜻이었으리라.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청이 주재하는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참석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가톨릭 미사 때마다 울려 퍼지는 ‘평화의 기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시의 성자가 걸은 길을 따라 한반도의 화해와 일치를 앞당기는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기도해 마지않는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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