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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그 커다란 몽고반점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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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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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얼마 전 음료수 컵을 들고 있다가 잘못해서 쓰러뜨릴 뻔 했다. 그러자 “아이코”하면서 아기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짧은 소리가 하루 종일 내 귀를 맴돌았다. 그저 작은 신음 소리였는데도 우리 딸의 어릴 적 시간들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 딸은 제대로 말을 하기까지 과도기 언어가 꽤 오래 갔다. 되는대로 하루 종일 떠들었는데 그 말들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그 당시 내가 쓰던 육아 일기장에 따로 어록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는 ‘하삐’ 할머니는 ‘함미’ 마스크는 ‘따다꼬’ 아이스크림은 ‘아이스치키미’ 등 자기가 발음하기 좋은 대로 마음껏 내뱉었다. 어찌나 중독성이 강한지 남편과 나는 그 말을 자주 따라 하곤 했다. 그 말들은 유통기간이 짧았는데,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몇 달이 지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사라진 건 또 있다. “인상 써 봐.” 그러면 눈을 흘기듯이 째려보는 표정을 짓곤 했는데 그 표정이 귀여워서 매일 시켰다. 어느 순간 어른들의 노리개 감이 되기 싫었는지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이쁜 짓!”하고 말하면 오른 쪽 볼에 검지를 갖다 대던 동작도.

그리운 게 하나 더 있다. 우리 딸 엉덩이에 있던 손바닥 만 한 몽고반점. 아기 때만 있었던, 딱 그 자리에만 있던, 내 아기라는 흔적이었다. 매일 아이를 씻기다 보면 엉덩이와 등 경계선에 커다랗게 푸른 반점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모양이 꼭 누가 때린 듯이 보였다. 색깔도 깊은 바다처럼 짙푸른 색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그 반점의 위치가 변해 갔다. 점점 위로 올라오더니 엉덩이를 완전히 벗어나 등 쪽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옷을 갈아입는 딸아이의 등을 보게 되었다. 목 바로 밑의 등 쪽에 자리 잡은 몽고반점. 크기가 손바닥만 하게 컸던 것 같은데 아주 작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몽고반점이 작아진 걸까? 아이 몸집에 커져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걸까? 아니면 내 기억의 오류일까?

아이는 아랑 곳 없이 떠들고 있었다. “엄마, 있잖아. 요즘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알아?” 이러구저러구 쫑알쫑알 떠드는 모습은 아기 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몸에 있던 몽고반점만 조용히 자리를 옮겨갔다.

그 작은 반점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가 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색깔도 많이 흐려졌다. 그 색이 옅어지는 동안 엉덩이에서 허리로 등으로 자리를 내어준 몽고반점. 나에게 우리 아기 인증 점이라고 떠들게 했던 그 몽고반점이 자꾸 나를 떠나려 한다.

아이를 씻길 때마다 나의 눈길을 붙잡던 그 퍼런 멍. 그 멍이 뒤덮고 있던 아기의 몸은 그 후 몇 배로 커졌다. 이제 다시는 내 품에 안고 씻길 수가 없다. 그 때의 아기는 여전히 내 가슴에 있는데.

모든 것들이 그립지만 다행이다. 이제 내 딸은 모든 말들을 정확하게 발음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푼수로 보일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만약 몽고반점이 자기 비율대로 같이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딜 가나 두드려 맞았다고 오해를 받을 것이다. 또 목욕탕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가던 중 자연스레 자리를 내어 준 몽고반점. 나도 이제 슬쩍 내 자리를 내어 주어야겠다. 이번 주 딸아이랑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숙제가 너무 많아서 안 된단다.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구랑 잘만 만나더니.’ 이제는 우리 딸과 팔짱 끼던 자리도 내어 주어야 하나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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