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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강금실 칼럼]두 원로 학자가 물었다, 자넨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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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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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있었던 서울시 주최 전환도시 국제콘퍼런스와 12일부터 14일까지 계속된 파주 생태문명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두 원로 학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존 B 캅 주니어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코튼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The Living Economies Forum 대표가 그들이다. 이들은 현재의 산업문명 대안으로 생태문명(Ecological Civilization) 담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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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캅은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philosophy of organism)에서 발전한 과정신학(Process theology) 전공자이다. 그에게서 생태문명사상이 싹튼 것은 40대였던 1970년경부터였다. 계기는 1969년 여름 갑자기 찾아왔다고 그는 술회했다. 그때까지는 글로벌 사회에서의 수많은 불의와 그것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면서도, 많은 국가들의 독립을 가능케 하는 글로벌 운동이 그들의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고 한다. 선진국 입장에서는 세계 어디서든지 발전의 과정을 가속화하도록 관대하게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18살이던 아들이 글로벌화 문제에 깊은 인식을 갖고 있어 그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는 그때까지 당연시했던 미국의 사회구조와 개발 패턴이 인류를 전 세계적인 자기파괴로 이끌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 ‘진보’가 이뤄지는 바로 그 방식-산업화된 세계의 경제적 프로그램과 발전 정책-이 모두 지구에서 인간의 삶의 토대를 파괴하는 전체 과정의 부분임을 깨달았다. 인류 생존이란 이슈는 압도적으로 중요해서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했다.

그는 1973년 클레어몬트 과정사상연구소를 설립한 후 생태신학, 더 나아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적용한 생태문명론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을 계속 발전시켜왔다. 그가 주창한 생태문명론은 중국의 학자들과도 깊은 교류를 이어가는 주제가 되었고, 2012년 중국 공산당헌법에 국정과제로 생태문명이 명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데이비드 코튼은 경영학전공자로 활동하다 1970년경부터 20여년간 미국 국제개발처의 경영관리고문 등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국제개발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미국이 개발과 원조를 통해 그 나라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성공을 도울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나 그들의 공동체가 모두 해체되고 삶이 더 악화되는 상황을 직접 겪으며 깊은 회의를 체험했다. 1992년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는 경제구조를 고민하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살아있는 경제(Living Economy)를 표방하는 생태경제사상을 전개하게 된다.

이번에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문명은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며 발전해왔고,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대중, 생명체, 지구를 억압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재화를 창출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생명체를 파괴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자살경제(suicide economy)’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 두 학자의 강의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들이 제안하는 생태문명론에 앞서 그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었다. 그 두 사람은 어떤 경험 또는 예지적 성찰의 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전환시켰고, 그 과정에서 담대한 결단과 치고 나감의 힘을 보여줬다.

존 캅은 1950년대에 과정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평생 동안 자신의 철학적 기조에서는 단 한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 즉각즉각 응답하며 자신의 삶을 더 깊고 폭넓게 전개시켜왔다. 과정신학에서 생태신학, 다시 존재의 상호관계성에 주목하는 생태문명론으로, 생각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평생에 걸쳐 거침없이 계속 자신을 바꿔나간다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현대 유기체철학의 대가인 화이트헤드라는 큰 돛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존 캅은 그 행운을 삶의 행복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삶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가 하면 행복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 뭔가. 몸과 마음이 쾌적하고 건강한 시공간적 여건에 잘 놓여져 있어 근심과 불만이 사라진 상태가 아닐까 싶다. 존 캅은 깊은 신앙으로부터 우러나는 정신활동으로 신체적 건강도 잘 유지하고 내적 갈등이 없으며 좋은 벗들을 계속 만나가는 풍성한 삶, 행복한 삶의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 코튼에게는 언제나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라는 소개가 따라다닌다. 그 명칭은 그가 세속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정점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50대 중반에 이르러 다른 길을 찾아 삶을 전환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한참 일할 때 인도인 친구에게 “네가 할 일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주류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에게서는 정면에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떠나는 고전적이며 미학적인 삶의 서사가 묻어난다.

두 학자의 강의를 듣고 돌아가던 차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 꽃, 동물 같은 생명들은 돈 없이 산다. 그런데 사람은 돈 없이는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되어간다. 누가 행복한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더 행복하다면, 자신의 삶의 영역을 개척하고 도약하고 헤쳐나가는 모험, 설레는 미래가 있다는 그것일 터이다. 그런데 점점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스스로 아무리 자존감을 지키고 싶어도 절로 비루해지고 구차해진다. 다른 삶을 개척한다든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삶을 전개시켜나갈 기회도 사회적으로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반복해야 한다. 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속 깊이 우러나오는 자신의 갈망과 현실 사이에 갈등하고 고뇌하면서도 계속 그걸 붙잡고 밀치고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다시 만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은 이 연로한 두 학자의 삶은 내적으로 주어지는 고민과 과제에 정직하라는 교훈을 남긴다. 포기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가다보면 길이 나타난다.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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