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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트래블러]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여행에세이…더 풍성해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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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규림일기' 저자 김규림 인터뷰

매일경제

김규림 작가의 본업은 마케터다. `배달의민족`에서 운영하는 `배민 문방구`의 제품을 기획해 출시하는 일을 한다. [사진 = 고서령 기자]


묘하게 끌린다.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것 같은 그림체, 생각나는 대로 휘리릭 써내려간 듯한 글에 왠지 모르게 빠져든다. 애써 가공하거나 다듬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랄까. 읽다 보면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친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도 든다. 손 글씨와 손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에세이 '뉴욕규림일기'의 저자 김규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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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에서. ⓒ김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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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기록

김규림 작가는 본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여행자였다. 한번 여행을 가면 사진을 수만 장씩 찍어왔을 정도. 그림일기로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1년 전부터다. "뿌듯한 마음으로 여행 사진첩을 열었는데, 어? 내가 이런 데를 갔었어? 싶은 사진이 너무 많은 거예요. 분명 내 손으로 셔터를 눌렀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죠. 그때부터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도쿄 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김 작가는 사진기 대신 노트와 펜을 넉넉히 챙겼다. 문구를 좋아해 평소에도 노트에 글쓰기를 즐겨했기에 그림일기를 쓰는 재미에 금세 푹 빠졌다. 보름 동안 두꺼운 공책 두 권을 그림일기로 가득 채웠다. 이 공책 두 권은 2017년 10월 '도쿄규림일기'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지난 8월 작가의 두 번째 여행 그림일기인 '뉴욕규림일기'가 출간됐다. 이번엔 2주 동안 뉴욕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손으로 쓰고 그리기 시작한 뒤로 완전히 다른 여행을 하게 됐다고 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림을 그리려면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평소엔 놓쳤을 법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됐어요. 글을 쓸 때도 그냥 '좋았다'고만 쓰면 민망하니까 왜 좋았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됐고요. 여행 중 쓰고 그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직접 해보면 알게 돼요. 이게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여행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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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MOMA에서. ⓒ김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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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여행 말고 나의 여행

'뉴욕규림일기'는 일반적인 여행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겐 불친절한 책이다. '뉴욕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같은 정보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작가의 취향이 100% 반영된 개성 넘치는 장소와 사적인 여행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작가는 뉴욕을 여행하는 2주 동안 자유의 여신상도 보러 가지 않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꼭대기 전망대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점과 서점, 빈티지숍을 마음껏 탐닉했다. 킥보드를 타고 뉴욕 구석구석을 누비고, 공원에서 레몬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나절 햇살을 즐겼다. "제가 뉴욕에 간다고 하니까 지인들이 '뉴욕에서 여긴 꼭 가 봐야 돼!'라면서 많은 장소를 추천해줬어요. 그런데 추천받은 곳을 다 나열하고 나니까 정작 제가 좋아하는 걸 할 틈이 없더라고요. 그런 여행은 남의 여행이지 내 여행은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래서인 듯하다. 온전히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고 좋아 보여서. 어쩌면 부러워서. "자신만의 여행, 자신만의 기록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제 책을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고서령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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