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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박홍근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머릿속에 칩 꽂으면 시각장애도 극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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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보는 세계지식포럼 ◆

매일경제

"사람 머릿속에 컴퓨터 칩을 꽂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칩이 머릿속 생각을 읽고 사지마비 환자도 의지대로 온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박홍근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9회 세계지식포럼 '빅 테크 빅 웨이브: 기술 르네상스' 세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외부 변수들을 엄격히 통제한 연구실 환경에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며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앞을 볼 수 있게 만들고 척수가 손상된 환자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시험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소개했다. 머릿속 컴퓨터 칩이 환자 생각을 컴퓨터 신호로 변환시키고 이후 팔다리에 달린 전극 장치로 전달하면 이 장치가 근육에 전기 자극을 줘 환자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기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컴퓨터 칩이 환자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 신호로 바꿔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뇌는 수백억 개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고 이 신경세포 간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박 교수는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첫 단계는 '두뇌 지도 그리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신경세포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저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지도 그리기에 매달려 있다"며 "초파리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두뇌의 지도 그리기는 완성됐고 인간 두뇌에 대해서도 곧 완성도 높은 지도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간 뇌 속을 들여다보려는 시도 중 하나가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칩을 뇌 속을 들여다보는 카메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뇌 세포들 간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큰 소리로 이뤄지는 대화뿐만 아니라 속삭이는 신호까지 파악해내는 것이 현재 연구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까진 야구경기장 밖에서 관중이 지르는 환호성과 야유 소리만 듣고 실제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추리하는 수준"이라며 "직접 경기장에 들어가서 경기를 관람해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뇌 속을 들여다볼 고도로 정밀화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관련 연구와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어 향후 10~15년 내에 뇌 기능에 대한 파악이 끝나고 이후 컴퓨터 칩 이식으로 환자가 장애나 질병을 이겨내는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서울대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대학 재학 중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대 종신교수 등 박 교수의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분자전자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분자전자과학이란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를 분자 몇 개로만 만들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기술이다.

분자전자과학을 연구하다가 뇌과학까지 연구 분야를 넓히게 된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학계에는 특정 부문 전문가들이 다른 부문에서 활용해 융합 연구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고 연구자가 원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미국은 연구 인프라스트럭처도 잘 깔려 있고 재정적 지원도 탄탄한 편이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온 창의적인 인재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 연구자에게 매력적"이라고 꼽았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니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시도들을 해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경우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주어진 시험 문제를 잘 푸는 모범생들이 학계에 남아 연구를 하게 된다"며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창의적 인재들은 교육 과정에서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 과학의 난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기존 연구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창의적 인재들이 많이 필요하다"며 "교육 현장에서 인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혜순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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