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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카쇼기 사태 사우디 개혁 제동…트럼프 "가혹한 처벌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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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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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됐다는 의혹이 힘을 받으면서 사우디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33)가 주도한 국책 사업과 콘퍼런스에 해외 주요 기업들이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궁중 쿠데타를 통해 왕위 계승권을 강탈한 빈살만 왕세자에게 최대 위기가 닥친 셈이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카쇼기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우디 관광 프로젝트 이사로서의 업무를 중단하겠다"며 "사우디 공공투자펀드(PIF)와 관련된 투자 논의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CNN에 따르면 미국 경영컨설팅기업인 하버그룹도 사우디 국책 사업과 관련된 컨설팅 업무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빈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준비한 사우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Neom)'에 비상이 걸렸다. 어니스트 모니즈 전 미국 에너지장관은 네옴과 관련한 자문이사 역할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샘 올트먼 와이콤비네이터 사장과 네일리 크루스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의장도 "카쇼기 실종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자문역을 보류하겠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해외 주요 기업의 보이콧은 사우디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석유 중심 산업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PIF를 앞세워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또 2025년 완공을 목표로 5000억달러를 들여 네옴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23~25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리는 국제 투자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에도 불참자가 속출하고 있다. 자칫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할 위기다. 사우디는 지난해 처음 열린 이 행사를 통해 네옴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FII에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제임스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 재계 거물급 인사가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막의 다보스'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카쇼기 사건 발생 이후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브랜슨 회장,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가 FII 불참 의사를 밝혔다. 코스로샤히 CEO는 "카쇼기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 역시 FII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사우디 정부에 통보했다.

전문가들은 카쇼기 살해 의혹으로 그동안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해온 빈살만 왕세자의 노력에 제동이 걸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루스 리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빈살만 왕세자는 개혁가 내지 혁명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몹시 애써 왔다"며 "이제 그 베일이 갈가리 찢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치권은 사우디와의 관계 재설정, 제재 등을 거론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CBS방송과 인터뷰하면서 "그것(사우디 배후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매우 화가 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며, 가혹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쇼기 살인 의혹 사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무기 수출에 제동을 걸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란 봉쇄의 핵심 파트너인 사우디와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카쇼기의 실종을 놓고 '사우디 정부 배후설'이 확산하자 사우디 정부가 정면 대응에 나섰다. 사우디 외무부는 14일 성명에서 "아랍, 이슬람권의 지도국인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국제사회의 안정과 안보를 확립하는 데 앞장섰다"며 "사우디는 이런 우리의 기여를 헐뜯고 위협하는 어떤 시도도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우디를 깎아내리는 어떠한 행태라도 더 크게 갚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게재해온 카쇼기는 지난 2일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실종됐다. 한편 카쇼기 살해 의혹과 관련해 그가 차고 있던 애플워치가 진실을 규명할 '스모킹 건(사건의 결정적 증거)'으로 떠올랐다. 터키 일간 사바흐에 따르면 이 애플워치가 카쇼기가 영사관으로 들어간 뒤 미궁에 빠진 내부 상황을 외부로 '전송'했고 그 덕분에 터키 당국이 파일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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