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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산악인 90여명 희생…48년째 이어진 조난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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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등반 개척한 삼형제… 2년 새 모두 산에서 숨지기도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말의 뜻을 범인(凡人)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들며 낭떠러지에 발자국을 찍었고, 끝내는 산의 일부가 돼 떠난 한국 산악인 90여명의 조난사는 48년째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지난 13일 한국인 원정대가 숨진 채 발견된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험산으로 손꼽힌다.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에 위치한 구르자히말은 접근이 어렵고 인근에 숙박 등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애달픈 도전사의 시작이자 한국 원정대의 첫 히말라야 조난 사례는 1970년대에 나왔다. 한국 히말라야 등반의 개척자이던 김정섭·기섭·호섭 형제가 모두 히말라야서 영면했다. 1971년,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장비와 식량을 품고 김호섭 대장과 동생 김기섭 대원이 마나술루(해발 8163) 등정에 나섰다가 7600 지점에서 갑작스레 불어온 돌풍에 김기섭 대원이 빙하 틈으로 추락했다. 이듬해 김정섭·호섭 형제가 다시 마나술루에 도전했고, 6500 지점에 캠프를 차렸다가 눈사태를 만나 원정대 15명이 숨지는 참사를 당했다.

제주도 출신 산사나이 역시 불귀의 객이 됐다. “정상이 바로 거기 있다는 사실이 몸을 전율시켰다”는 고상돈 대원은 훗날 산악인의 날로 지정된 1977년 9월 15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세계에서 56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6194)를 등정한 뒤 하산하다 추락사해 “산은 최고의 안식처”라는 입버릇을 따라갔다.

여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인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지현옥 원정대장은 1999년 안나푸르나(8091)에 오른 뒤 “정상!”이라는 짧은 교신으로 환희의 순간을 대신했다. 치미는 오열을 가까스로 삼킨 뒤 내뱉은 그 두 글자가 유언이었다. 그는 하산 도중 해발 7800 지점에서 실종돼 안타까움을 샀다.

2011년에도 위대한 산악인이 명을 달리했다. 1993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이 이끈 원정대가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실종됐고,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박 대장은 마지막 교신에서 “기상 상태가 나쁘고 낙석이 많아 하산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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