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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과학TALK] 꿈의 에너지 ‘인공태양’...‘메이드인코리아’ 핵심부품 첫 조립 준비 ‘착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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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약 28km에는 소도시 ‘엑상 프로방스’가 있다. 여기에서 차로 약 한시간을 달리면 시골 지역인 카다라슈가 나온다. 10월 10일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하루 종일 내린 가운데 방문한 카다라슈에서는 태양을 지구 상에서 만드는(인공 태양) 인류 최대 국제 공동 프로젝트 ‘국제핵융합실증로(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가 한참 건설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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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어셈블리 빌딩 입구에서 어셈블리 공간 방향으로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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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용기를 구성하는 ‘섹터’ 1개의 무게가 450톤입니다. 섹터를 감싸는 초전도자석을 만들기 위한 ‘TF코일(Toroidal Field coil)’ 2개가 섹터와 조립됩니다. TF코일은 개당 무게가 310톤이니까 620톤 정도 되는 거죠. 여기에 50~60톤 가량의 열차폐체도 조립됩니다. 총 1150톤에 달하는 부품을 1~2밀리미터(mm) 오차범위로 붙이는 작업이 이뤄질 겁니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을 하려는 거죠."

양형렬 ITER 토카막조립부 어셈블리 서포트 팀장은 핵융합 실증로의 핵심 부품인 진공용기 섹터가 TF코일과 조립되는 ‘어셈블리 빌딩’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장치인 도넛 형태의 진공용기는 총 9개의 섹터로 구성된다. 이 중 1번과 6, 7, 8번 섹터 제작을 한국이 맡았고, 현대중공업이 현재 6번 섹터를 제작 중이다. 6번 섹터의 공정률은 약 84%로, 9개의 섹터 중 가장 빨리 제작되고 있다. 프랑스 카다라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프로젝트인 ‘인공 태양’ 구축 사업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엔지니어링을 한국 과학자들과 기업이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하려는 곳이었다.

◇ 공정률 57% ITER...7년 뒤 지구에서 인공 태양 뜬다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항성’인 태양을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고민도, 탈원전 논란도 필요없다. ‘인공태양’으로 물을 끓여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에너지를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태양은 태양이 열을 내는 원리인 핵융합 반응을 그대로 구현하면 된다.

수소 원자끼리 융합할 때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면서 잃게 되는 질량만큼 중성자가 튀어나오는 게 핵융합 반응이다. 이 때 튀어나오는 중성자는 엄청난 열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이 에너지를 이용하는 게 핵융합 에너지다. 핵융합 재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 1g만으로 이론상 석유 8톤을 이용해 만드는 에너지 분량을 생산한다.

태양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인 플라즈마(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기체) 상태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중심부 약 1400만℃의 온도에서도 플라즈마 상태를 꾸준히 유지한다. 태양 자체의 큰 질량과 어마어마한 중력이 플라즈마를 촘촘한 밀도로 가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 질량의 0.0003%에 불과한 지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핵융합 반응은 플라즈마의 밀도와 온도를 곱한 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지속될 수 있다. 태양만큼 큰 중력을 얻기 힘든 지구에서는 태양에서의 플라즈마 밀도를 만들기 어렵다. 때문에 지구에서 핵융합 반응을 지속하려면 태양보다 훨씬 높은 1억℃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어 태양보다 부족한 밀도를 상쇄해야 한다. 이처럼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로 핵융합 반응이 지속되는지 실증하기 위한 연구가 바로 ITER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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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카다라슈 ITER 현장 입구에 ITER 회원국의 국기가 걸려있다. /ITE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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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사업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한국이 참여했다. 카다라슈 현장에서 만난 정기정 국가핵융합연구소 ITER 한국사업단장은 "한국은 2003년 ITER에 가입한 뒤 ITER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며 "현재 공정률 57%인 ITER 구축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핵융합 실증로 핵심 부품 진공용기 섹터 첫 조립이 조만간 한국 주도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TER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자기장을 이용해 가두는 자기 밀폐형 핵융합 장치인 ‘토카막’으로 구현된다. 토카막은 러시아에서 처음 개발됐다. 도넛 형태의 진공 용기에 수소를 넣은 뒤 1억℃가 넘는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로 만든다. 플라즈마가 진공 용기에서 새어나가지 않고 플라즈마 상태인 수소 원자핵이 서로 만나 융합반응이 원활이 일어나는 플라즈마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장을 수직과 수평방향으로 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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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ITER 건설 현장. 왼쪽 둥근 모양의 구조물이 토카막 장치가 들어가는 토카막 콤플렉스다. /ITE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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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약 4.2캘빈(약 –268.9℃)의 온도에서 전기적 저항이 없는 초전도 자석이 만든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진공용기를 가장 차가운 자석이 감싸고 있는 구조다. 베라나르 비고 ITER 사무총장은 "ITER는 파리에 있는 에펠탑 3개 반에 해당하는 약 2만3000톤의 무게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 지구상에서 가장 큰 보온병·액체헬륨 생산시설 보유

토카막을 구성하는 도넛 형태의 진공용기를 9개로 나눈 섹터와 TF코일 조립은 높이 22m, 폭 20m, 무게 900톤에 달하는 2기의 SSAT(섹터부조립장비)가 맡는다. 현재 ‘어셈블리 빌딩’에는 SSAT 1기가 한국에서 만들어져 이미 설치됐다. 나머지 1기도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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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들어져 ITER 어셈블리 빌딩에 설치된 SSAT. /김민수 기자.



진공 용기와 TF코일 등을 조립하는 어셈블리 빌딩 옆에는 실제로 핵융합 실증로가 놓이는 ‘토카막 콤플렉스’가 있다. 10일 찾은 이곳은 높이 30m, 폭 30m의 공간으로 마치 ‘콜로세움’이 떠오를 정도로 웅장했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공간으로 건물의 외부 구조 건설은 거의 마무리됐다. 공간 주변으로는 3m 두께의 콘크리트 벽이 두텁게 싸고 있었다. 핵융합 재료인 삼중수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차폐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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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1층에서 바라본 토카막 콤플렉스 내부.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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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 빌딩과 토카막 콤플렉스 주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보온용기와 액체 헬륨 생산 시설이 있다. 핵융합실증로인 토카막을 완전히 감싸는 보온 용기는 ‘저온용기(크라이오스탯, Cryo Stat)’으로 불린다. 영하 –268.9℃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초전도자석의 온도가 외부 공기로 올라가지 않도록 한번 더 외부를 감싸는 진공 보온용기로 보면 된다.

양형렬 팀장은 "크라이오스탯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가장 큰 기술적 난제는 용접"이라며 "스테인리스 스틸은 열에 쉽게 휘어지기 때문에 기계적·구조적 변형을 최소화하는 용접 기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크라이오스탯은 아랫부분에 해당되는 ‘베이스(base)’와 베이스 위에 얹히는 ‘로어(lower)’의 절반이 제작중이다. 베이스 무게는 1000톤, 로어 절반의 무게는 900톤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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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중인 크라이오스탯 ‘로어’의 절반 부분. 무게만 900톤에 달한다.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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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오스탯이 외부 온도와 환경으로부터 ITER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진공 보온용기라면 ‘액체 헬륨 생산시설(ITER Cryogenic Plant)’은 ITER에서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초전도자석의 극저온 상태를 직접적으로 유지하는 4.2K(영하 –268.9℃)의 액체헬륨을 생산해 ITER 주변의 초전도 자석 주변을 돈다. 양 팀장은 "심장이 혈액을 온몸에 보내주듯 액체헬륨을 초전도 자석으로 흘려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 핵융합 발전 상용화 언제 이뤄질까

ITER의 쏠린 전세계의 시선은 언제쯤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할 수 있을까다. ITER 회원국들은 2025년 수소와 헬륨을 이용한 최초 플라즈마 가동으로 ITER가 문제없이 작동하는지를 확인한 후 실제로 가장 강력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중수소-삼중수소를 이용한 플라즈마 가동을 2035년에 진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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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에너지를 지구에 공급하는 ITER 건설현장을 지구에 담았다. /ITER 제공.



핵융합 에너지로 실제 전력을 생산하는 ‘데모’ 버전의 핵융합 발전소는 2035년을 전후한 2030~2040년께 전격 구축될 전망이다. ITER의 안정적 작동이 검증되면 데모의 경우 기존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하는 원리와 똑같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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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비고(사진) ITER 사무총장은 "데모는 약 7만5000가구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규모가 될 것"이라며 "ITER 규모보다 작지는 않겠지만 발전 설비에 최적화하는 작업을 거치면 ITER 규모의 1.5~2배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50년이 되면 회원국들 중 데모를 거쳐 핵융합 발전소를 상용화하는 국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 때부터는 핵융합 발전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을 인류가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라슈(프랑스)=김민수 기자(rebor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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