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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책과 삶]진실을 흐리는 엘리트들의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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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야스토미 아유미 지음·박솔바로 옮김

민들레 | 208쪽 | 1만2000원

경향신문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할 입장이 아닙니다.”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고위 공직자들의 입에서 빈번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입장(立場)’이라는 단어다. 한국의 국어사전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풀이하면서 ‘처지(處地)’라는 말로 순화하기를 권하고 있다. ‘입장’은 일본에서 유입된 낱말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식 발음은 ‘다치바’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살펴보면서 그것이 ‘입장주의’라는 삶의 태도로 변화해간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에 이 단어는 “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장소”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어떤 사람이 놓인 지위나 사정,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고방식이나 관점” 등으로 통용된다. 왜 이렇게 의미의 전용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메이지 헌법에 의해 ‘신민’, 즉 ‘국민’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가문 중심주의’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에도시대 사람들은 이에(家)를 단위로 생활”했다. ‘이에’란 중세시대부터 사회를 구성해온 친족 집단을 뜻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에에 소속돼 삶을 영위했으며, “이에를 하나의 생명체로,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에의 세포 같은 것”으로 여겼다. 누군가 죄를 저지르면 범인이 아니라 이에가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이에에 속한 모든 사람을 처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데 ‘신민’이나 ‘국민’은 개인에게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징병제에 따라 소집된 것은 이에가 아니라 개인이었다. 저자는 “이에에 속했던 사람들에게 개인이라는 틀이 주어지자 이에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여기서 생겨난 것이 ‘입장’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입장은 이에와 개인의 뒤섞임이거나 변형인 셈이다. 저자는 “일본에서는 개인이 존중된 적이 없다”면서 “이에를 위해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입장을 위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태평양전쟁 때 스물아홉의 나이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남성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외롭고 슬프다는 감정을 떨쳐버리고 주어진 사명과 임무에 충실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마지막까지 싸우고 또 싸워내고자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입장은 일본인들에게 하나의 삶의 태도가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유대’라는 끈에 매인 입장의 가축(家畜)이 됐다”라는 신랄한 문장을 구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입장주의’야말로 일본 사회의 근본적 이데올로기라는 뜻이다. 입장주의의 체득은 일찌감치 유년기부터 시작된다. “유년 시절부터 아이들은 특정 상황에서 ‘입장’을 분별해내는 감각을 체득한다. 어린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지킬 수 있는지를 안다. 친구들과 사귀는 과정에서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누구를 적으로 돌리면 자신의 ‘입장’을 지킬 수 있는지도 안다. 상대가 원하는 답을 즉석에서 내놓는 능력이 점점 갖춰진다.”

경향신문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난 2011년 4월11일 도쿄전력 사장 마사타카 시미즈(왼쪽)가 정부 관료와 만난 뒤 언론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집필된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는 “그럴싸한 말로 진상을 흐림으로써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하는 것”을 “도쿄대식 화법”이라고 부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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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논리적 비약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입장주의를 계급적 측면으로 연결하는 분석은 눈길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는 ‘입장이 있는 사람’과 ‘입장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입장이 있는 사람’은 유대를 통해 또 다른 ‘입장이 있는 사람’과 연결된다. 하지만 ‘입장이 없는 사람’은 연고 없는 상태가 된다. 한번 그 상태에 빠지면 더 이상 ‘입장사회’에 복귀할 수 없다.” 예컨대 “파견직과 비정규직, 무직인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입장주의가 낳은 거대한 병폐의 꼭대기에 누가 있는가. 저자는 도쿄대 출신들을 사납게 지목한다. 이 책의 핵심이다. “일단 입장을 정한 다음에 논의하라”는 암묵적 훈시는 일본 엘리트의 산실인 도쿄대의 뿌리 깊은 모토라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는 “일본의 엘리트 다수를 배출하고 있는 도쿄대에서 주입되는 입장주의”에 “불편함과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이런 시스템을 거친 사람들이 학문과 관청의 중추에 진출, 방관자라는 ‘입장’에서 기만적 화법을 구사한다”고 비난한다. 그 화술을 아예 “도쿄대식 화법”이라고 명명한다. “그럴싸한 말로 진상을 흐림으로써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하는 것”이다.

책에는 도쿄대 출신 엘리트 여러 명이 도마에 오른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집필된 이 책은 “도쿄대식 화법은 국가적 재난 때마다 등장한다”면서, 주로 일본의 원자력 엘리트들에게 화살을 날린다. 예컨대 도쿄대 공학계의 오오하시 히로타다 교수는 “한때 도쿄전력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원자로) 격납용기는 일억년에 한번 고장나는 것” “플루토늄은 마셔도 괜찮은 것”이라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인데, 그가 2012년 쓴 한 편의 글은 이 책의 저자에 의해 “도쿄대식 화법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또 저자는 “자신들의 입장을 외부자라고 단언”한 곤도 슌스케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원자력위원회는 안정성에 대해 책임이 없다’며 웃는 얼굴로 발언”한 스즈키 다쓰지로 위원장 대리인 등을 성난 언어로 비난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에는 어떤 엘리트가 있냐”고 물으면서 “아마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답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력에 의한 차별이 당연한, 그런 광기에 지배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저자 야스토미 아유미(55) 역시 도쿄대 사람이다.

그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다. 그래서 책은 내부자의 격문(檄文)처럼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고백도 한다. “나는 50년 넘도록 남성으로 살아오다가 지금은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여장 도쿄대 교수’로 유명해졌고 어딜 가도 환영받는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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