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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닭 100마리 살렸다’는 미원 광고, MSG 편견 벗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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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무첨가 마케팅이 촉발한 MSG 유해 논란
유머러스한 광고로 ‘조미료 사용 죄책감’ 역전 시켜

조선일보

서울시청 맞은편 건물에 부착된 미원 광고. MSG 100g의 감칠맛을 내려면 닭 100마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유머러스하게 부각시켰다.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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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닭 100마리를 살렸다.’ ‘나는 오늘 소 한 마리를 살렸다.’

요즘 화제가 되고있는 광고 캠페인의 메시지다. 인공조미료(MSG) 100g의 감칠맛이 닭 100마리 또는 소 1마리를 우려낸 수준이라는 점을 재치있게 풀어냈다. ‘미원’을 생산하는 대상그룹이 지난 1일 공개한 광고 영상은 특히 20대 초중반 연령대의 호응을 얻으며 5일만에 각각 누적 30만 뷰를 돌파했다. 시청과 홍대 앞, 강남역 건물 벽면에 붙인 대형 광고도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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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건물에 걸린 미원 광고. /대상


이번 광고는 리뉴얼된 미원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대상이 진행해온 광고 캠페인의 일환이다. 대상 관계자는 "지난 2014년 ‘밥집 미원’이라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미원을 넣어 나트륨 양을 30% 줄인 국밥을 1970년대 가격인 100원에 판매해 하루 물량이 조기 매진됐고, 지난해에는 슈퍼주니어 출신 아이돌 김희철을 모델로 한 ‘픽 미원’ 유튜브 영상이 공개 20일 만에 누적 조회수 100만 건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고 했다.

MSG가 오랫동안 시달려온 ‘건강에 해롭다’는 부정적 인식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양새다. "MSG가 건강에 유해하다는 건 대표적 불량지식이자 오해"라고 알려온 식품공학자 최낙언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광고가 나오면 대번에 난리가 났을텐데, 아무도 시비를 안 거는 걸 보면 상황이 많이 좋아진 듯하다"고 했다. 소매시장 매출액도 미원의 경우 지난해 소폭이지만 성장세로 돌아섰다.

MSG(Mono Sodium Glutamate·글루탐산나트륨)는 100년 전 일본에서 탄생했다. 1908년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다시마 추출물을 연구해 음식에 감칠맛을 주는 물질이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탐산임을 밝혀냈다. 사탕수수를 발효해 생산한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첨가해 1909년 상품화한 제품이 세계 최초의 MSG ‘아지노모도(味の素)’이다. 국내에서는 미원(현 대상그룹)이 1956년 처음 MSG를 국산화했다.

MSG 유해설은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제기됐다. 중식당에서 식사한 일부 미국인들이 메스꺼움이나 두통, 손발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호소했다. 중식당에서 다량 사용하는 MSG가 이러한 불쾌감의 원인이란 의학 보고서가 1960년대 말부터 발간됐다. MSG와 관련된 다양한 증상을 포괄하는 ‘중식당 증후군(차이니즈 레스토랑 신드롬)’이란 말이 생겨났다. 중식당 중후군은 1980년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1990년대 초 국내에서도 MSG 유해 논란이 불거졌다. 한 식품업체가 첨가물 업계에 진출하면서 차별화 전략으로 ‘무첨가 마케팅’을 하면서 MSG를 ‘화학조미료’라고 공격했다. 2012년부터 방영된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마치 MSG를 사용하면 ‘나쁜 식당’, 사용하지 않으면 ‘착한 식당’이란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위기는 의심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MSG 유해성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불안이 커지자 신문과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검증에 나섰다. 이를 통해 MSG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도 2010년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올초 식약처 식품첨가물 분류에서 ‘화학적 합성첨가물’이라는 용어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해외에서는 MSG 유해성 논란은 종결된 지 오래됐다. 1970년대 이미 JECFA(유엔합동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 등에 의해 중식당 증후군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1987년 JECFA는 MSG는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현재 조미료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에서 인체에 해를 준다는 증거나 이유는 없다"고 발표했다.

MSG 유해성 논란이 별달리 없었던 일본에서는 MSG를 꾸준히 사용해오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논란 이후 MSG가 또다른 감칠맛 조미료인 ‘자가분해효모’와 ‘가수분해단백질’로 대체됐다. 하지만 식품 전문 작가 톰 닐론은 ‘음식과 전쟁’(루아크)에서 ‘이 물질들은 소금과 결합하면 MSG로 변하는 글루탐산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사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간장, 된장, 젓갈 등 글루탐산이 주요 맛 성분인 식품을 전통적으로 섭취해온 동양인들은 글루탐산에 익숙한 반면, 그렇지 못한 서양인들은 글루탐산을 과도하게 사용한 음식을 먹을 경우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더 느끼는 듯하다"고 분석한다.

소비자 인식도 변하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그러나 "1990년대 사회 주역이었던 현재의 60~70대와 이들의 자녀인 40~50대에서는 MSG에 대한 불신이 확고해 바꾸기 힘들다"며 "최근 광고 캠페인은 미래 소비자인 20대들이 나중에 요리하게 됐을 때 거부감 없이 MSG를 찾도록 하는 데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칠맛을 내려면 소 1마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치있게 풀어낸 미원 광고 영상.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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