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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사람들-③남은 자의 슬픔] “아직 보내지 못한 내 딸, 이제 그만 잊으라니”…유가족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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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딸을 잃은 서수진(53) 씨가 딸의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 그는 아이가 생전 쓰던 책들을 모두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서수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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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후 1년 반 “아직도 아이의 죽음 인정할 수 없어”

-“이제 그만 잊으라” 주변의 위로 오히려 상처만 될 뿐

- 전문가 “유가족 트라우마 치유할 수 있는 기관 필요”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사랑하는 나의 딸. 너는 이곳에 없구나. 작년 3월 중학생이 되어서 예쁜 교복을 입게 되었다며 해맑게 웃고 기뻐하던 내 딸 효영아. 너는 교복을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아빠 엄마를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갔구나. 아빠 엄마에게는 이 세상 전부였던 내 딸. 왜 네가 그 먼 곳으로 가버렸는지…. ”

아이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넘었지만 서수진(53) 씨는 하루에도 수십번 씩 전하지 못하는 편지를 읊조린다. 서 씨의 딸은 지난해 3월 1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는 학교에 생리통으로 아프다고 보건실에서 쉰 다음 조퇴를 했고, 13층 집이 아닌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당시 효영이의 어머니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서 씨는 당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이날 운전도중 경찰로부터 ‘아이가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몇 분 뒤 다시 ‘마음 가짐을 하고 오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차마 운전을 할 수가 없어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후 그의 일상은 무너졌다. 곳곳에 아이의 흔적이 있는 집은 지옥이었다. 최대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선 잠만 자려고 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컴컴한 시야에 아이의 고운 얼굴이 가득 찼다. 운전 중 횡단보도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마주할 때면 모두 다 죽은 내 아이처럼 보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은 어떻게 하면 아이의 한을 풀어줄까 하는 생각만으로 채워졌다. 학교와 경찰 조사 결과 아이는 새 학기에 친구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의 휴대폰에는 친한 친구와 다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적어도 아이가 조퇴할 때 집에 전화라도 한번 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학교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학교에 가서 “죽은 아이를 위해 학교도 책임이 있다고 사과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수없이 매달렸다. 그는 “학교 측에서 아이에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다독여주면 아이가 하늘나라에서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그런데 학교에서는 유감이라고만 말할 뿐, 혹시라도 책임이 떠넘겨질까 따뜻한 위로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가족에 대한 주변의 시선 역시 그를 힘들게 했다.

아내와 산책이라도 하면 주변에선 딸 잃은 부모라고 수군댔고, 그가 힘들다고 토로하면 ‘이제 그만 빨리 잊으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말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말들이었다”고 했다.

정신보건센터나 자살예방센터에서 유가족 트라우마 상담이라도 받는 게 어떻겠냐고 그에게 묻자, “아직 아이를 보내지 못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어떻게 가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자살 유가족들 중에는 서 씨처럼 오랜 시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 유가족들을 밀착해 트라우마를 치유해줄 수 있는 기관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전국 정신보건센터나 자살예방센터에서 유가족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거나 모르는 유가족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유가족 상담에 대한 홍보를 늘리고 지역공동체와 연계해 유가족들을 초기부터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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