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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최영록의 내 인생의 책]⑤ 매천야록 (梅泉野錄) -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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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필로 쓴 ‘조선망국사 50년’

경향신문

1910년 한일병탄이라는 미증유의 비극에 직면하자, 전남 구례에 사는 한 선비가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나는 (꼭) 죽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 죽는 자가 한 명도 없다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는 유서와 절명시 네 편을 남겼다. 그중에 특히 가슴 먹먹한 한 편을 보자. “鳥獸哀鳴海岳嚬/槿花世界已沈淪/秋燈 卷懷千古/難作人間識字人(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그가 구한말 ‘지식인’의 표상이라 할 매천(梅泉) 황현(1855∼1910)이다. 그는 “도깨비나라의 미치광이(鬼國狂人)가 되지 않겠다”며 벼슬을 마다하고 궁벽한 시골에서 ‘역사의 기록자’로 은둔했다.

그가 기록했던 1864∼1910년에 이르는 약 50년은 파란만장한 급변의 시대였다. 그가 이 기간의 역사적 사실과 사건, 공적인 문건, 단편적 일화와 해외 소식 등을 관찰하여 역사가의 관점으로 기록한 것이 ‘조선망국사’와 진배없는 <매천야록>이다. 취재원은 다양한 사료와 그가 교유한 여러 인물 그리고 관보와 신문(대한매일신보) 등이다. 이른바, 한국판 사마천의 <사기>라 할 수 있겠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언론인을 보면서 매천이 자꾸 오버랩된 까닭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매천에게는 ‘구한말 3대 문장가’로 문명을 날린 ‘솔 메이트’(영재 이건창, 창강 김택영)와의 빛나는 우정이 있었는가 하면, 15세 아래의 아우 황원(1870∼1944)과 뜨거운 우애도 있었다.

황원은 가형의 문집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항일독립투쟁에 헌신하다 해방 직전 절명시를 남긴 채 형의 뒤를 따랐다.

최영록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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