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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WP “사우디 왕실, 반정부 언론인 암살 지시” … 트럼프 “끔찍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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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관서 살해, 시신 훼손 후 반출 ”

미 진상 요구로 국제문제 번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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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실종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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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정부 성향 언론인의 갑작스런 실종, 토막 살해설, 국가 최고 권력자의 개입….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60) 실종 사건의 충격적인 진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카쇼기가 비판해왔던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보도까지 나와 국제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졌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한 카쇼기의 실종과 관련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미 정보당국이 입수한 사우디 관리들의 대화 내용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미국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카쇼기를 사우디로 유인해 구금하라고 관리들에게 직접 명령했다. 사우디 정부는 현재까지 카쇼기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9일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터키 보안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카쇼기가 터키인 약혼녀 하티제와의 혼인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으려고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후 2시간도 안 돼 살해됐고 시신이 분리ㆍ처리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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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이스탄불의 사우디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카쇼기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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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의 지시로 인한 암살’로 결론을 내렸다. 조사에 따르면 카쇼기가 실종된 날 15명의 사우디 요원들이 전세기를 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들은 영사관 근처에 숙소를 잡고 영사관을 들락날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CCTV에 따르면 카쇼기가 이날 영사관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1시 14분. 그러나 나가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카쇼기가 영사관에 들어간 2시간 30분 뒤, 외교번호판을 단 6대의 차량이 도착해 사우디 요원들을 태우고 영사관을 떠났다. 터키 경찰은 이 차량 중 창을 어둡게 가린 검은색 밴 안에 카쇼기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에서 온 요원들 중 한 명은 시신 해부 전문가로, 카쇼기의 시신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 친정부 일간지 사바흐는 10일 살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사우디 요원 15명의 이름과 얼굴을 보도했는데, 이 중에는 ‘법의학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카쇼기가 피살되는 장면을 사우디 요원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터키 보안당국이 확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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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새벽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에서 입국하는 사우디 요원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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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보안당국의 한 관리는 NYT에 이번 사건을 ‘펄프픽션’(Pulp Fiction)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싸구려 통속 소설’이란 의미를 가진 펄프픽션은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끔찍한 범죄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NYT는 이러한 성격의 ‘작전’은 오로지 사우디 최고위급 지도자만 명령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우디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국제적인 파장도 커지고 있다. 터키 정부측가 사우디 왕실의 개입을 주장하면서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10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끔찍한 일”이라며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을 사우디에 요구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오랜 우방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식 방문 국가로 사우디를 찾았다. 빈살만 왕세자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도 “만약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영국은 '매우 심각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영국BBC방송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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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연합뉴스]


실종된 카쇼기는 사우디 일간지 알와탄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빈살만 왕세자의 강압통치를 비판하며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기사를 써 왔다. 사우디 정부에 ‘찍힌’ 그는 신변 안전을 우려해 지난해 9월부터 미국에 머무르며 WP 등의 신문에 빈살만의 ‘숙청’ 등과 사우디의 예멘 공습 등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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