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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해” 샘 스미스가 전한 거룩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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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고척돔서 첫 내한공연

관객과 능수능란한 밀당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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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으로 첫 내한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하는 샘 스미스. [사진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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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26)와 만남은 시작부터 달달했다. 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첫 내한공연을 보러 가는 길바닥 곳곳에 “내 마음이 당신에게로 가고 있어”(‘메이크 잇 투 미ㆍMake It To Me’) 등 노래 가사가 붙어 있더니 공연 시작 전에는 스크린 가득 “꽃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그게 내겐 더 쉬우니까” 같은 시구가 등장했다. 공연 역시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의 노랫말을 빌려 “오늘 밤은다 같이 휴대폰을 끄고 별에 의지하자”는 문구로 시작됐다.

하늘색 슈트를 입고 “서울!”을 외치며 무대 위로 등장한 스미스는 관객과 밀당하는 데 능했다. 첫 곡으로 ‘원 라스트 송(One Last Song)’으로 분위기를 달구더니 두 번째는 ‘아임 낫 디 온리 원(I’m Not The Only One)’ 후렴구를 무반주로 부르며 스탠딩 떼창을 이끌어냈다.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4’에서 에스더 김이 부르면서 국내 음원차트에도 진입하는 등 큰 사랑을 받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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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미스는 2만 여 관객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호흡하는 공연을 펼쳤다. [사진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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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외에도 보여줄 것이 많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2015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 등 4관왕을 안긴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를 비롯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래로 유명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 드디어 내 꿈이 이뤄졌다. 한국에 오게 해 줘서 고맙다”며 “내 음악이 가끔은 우울하고 슬프지만, 오늘 밤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인사를 건넨 그는 본격적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든 곡 중 하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고 운을 떼고 ‘레이 미 다운(Lay Me Down)’을 부를 땐 나지막이 속삭였고, EDM 듀오 디스클로저와 함께 한 ‘래치(Latch)’를 부를 때는 관객들에게 휴대폰 라이트를 켜 달라고 요청했다. 런던으로 상경해 바를 전전하며 노래하던 그를 알아보고 피처링을 부탁한 디스클로저 덕에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곡을 부르는 자신을 비추자 그는 감격한 듯 연신 손 키스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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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미스는 4명의 코러스와 5명의 밴드 멤버들과 함께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사진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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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롤러코스터처럼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갔다. 덕분에 관객들의 엉덩이도 바삐 움직였다. 영화 ‘007 스펙터’의 주제가 ‘라이팅스 온 더 월(Writing’s On The Wall)’처럼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는 조용히 앉아서 음악에 젖어들었다가도, ‘리스타트(Restart)’처럼 신나는 곡이 흘러나오면 “날 따라 해 보라”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탓에 다시 일어나 춤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때론 성스러운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가스펠 같고, 때론 어느 허름한 재즈바 같은 변화무쌍한 매력을 뽐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백미는 단연 ‘힘(HIM)’이었다. 그는 “사랑은 사랑일 뿐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 곡을 썼다.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노래를 이어나갔다. 일찍이 그래미 수상 소감 발표 당시 “날 차버린 그 남자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이 음반이 나왔다”며 성 정체성을 고백한 그였다. 진심이 담긴 노래에는 힘이 있었고, 어떤 순간보다 거룩한 공기가 공연장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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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가 주최한 '한글 이름 짓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심희수'가 쓰여진 부채를 들고 있는 샘 스미스. '마음을 기쁘게 하는 빼어난 목소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 샘 스미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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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그가 말한 주어는 항상 ‘나(I)’가 아닌 ‘우리(We)’였다. 그는 “아이 러브 유, 서울” 대신 “위 러브 유, 서울”이라 말했고, 노래를 부르는 자신뿐 아니라 노래를 듣는 우리가 모두 행복한지를 물었다. 코러스 4명과 밴드 5명 등 도합 9명의 멤버들과 눈을 맞추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며 노래하느라 때로 옆모습 혹은 뒷모습을 보였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더 많이, 더 자주 관객들과 눈 맞춤을 하며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기도(Pray)’로 100분간의 공연을 끝맺은 스미스는 “이틀 동안 서울을 돌아다녔는데 이곳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며 “오늘 이 콘서트는 앞으로 있을 수많은 공연 중 첫 번째다. 꼭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공연 이틀 전인 7일 입국해 홍대에서 2집 앨범 재킷 디자인을 문신으로 새기고, 8일 경복궁 관광 뒤 광장시장에서 산낙지 먹방까지 3박 4일을 알차게 즐기고 간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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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날인 8일 서울 광장시장을 찾아 산낙지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샘 스미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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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지난해 발매된 정규 2집 ‘더 스릴 오브 잇 올‘(The Thrill Of It All)’ 기념 월드투어 일환으로 일본ㆍ마카오ㆍ중국ㆍ태국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티켓 예매 오픈 즉시 2만 석이 매진되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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