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해방촌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정희조 기자/checho@ |
남궁인 전문의가 본 자살의 민낯
목숨 대신 다리잃고 환상통 겪고
양잿물 마셔 평생 말 못하기도…
“죽음에서 안식 찾으려던 사람들
자살엔 죽을 만큼의 고통 존재
살길 바라는 이들 알아줬으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 죽음은 없다.” 한해 평균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만 1만2463명. 이들 대부분은 현실의 고통을 피해 죽음을 택한다. 죽음은 안식일까. 그들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응급실 의사들의 대답은 회의적이다. 너무 힘들어 죽음을 택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다 겪고 나서야 안식을 얻는 과정을 그들은 매일 목도하기 때문이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자살을 기도한 환자들과 마주하는 일은 매일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상이다. 그는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죽음의 민낯을 낱낱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설득과 위로, 응원의 말을 갈음했다.
남궁 씨가 그래도 살라고 말하는 이유는 목전에서 목격해야만 하는 죽음의 현장이 뉴스처럼 간결하지 못한 탓이다. 병원 응급실은 의식이 남은 환자가 끝끝내 숨을 거두기까지 내뱉는 비명과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가족들의 절규가 도돌이표처럼 메아리치는 곳이다.
그는 “한 사람의 자살이 뉴스가 되면 달랑 세줄로도 설명된다. 하지만 뉴스가 아닌 그 사람의 실제 삶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라고 물었다. 의사 입장에서도, 자살은 기도한 사람 입장에서도 죽음의 문턱의 뛰어든 사람과의 전투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몇월 며칠 지하철역 어디에서 몇살쯤 된 아무개가 선로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그가 신변을 비관해 선로로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출근길 지하철 몇호선 어디 구간이 몇분 지연됐다’. 뉴스는 이렇게 끝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은 훨씬 복잡하고 기나긴 여정을 거친 후에야 찾아올 때가 많다.”
그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으려던 사람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영원히 남겨지게 되는 황망한 순간들을 목격한다. 죽어버리겠다며 출근 시간 지하철 선로 위로 뛰어들어 응급실로 실려온 70대 노인은 목숨 대신 두 다리만 잃었다. 119 구조대원이 어깨 짊어진채 들고온 두 다리는 봉합 가능성이 사라지자 의료폐기물로 처리됐다. ‘왜 죽지 않냐’며 고통 속에 절규하던 노인은 절단부를 치료하기 위해 해당 부위를 매끄럽게 다듬는 또 다른 절단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생살이 아물고 난 후엔 사라진 다리가 아파 엉엉 울며 환상통을 겪었다. 홧김에 양잿물을 마시고 식도와 기도가 타버린 사람들이 평생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찰나의 고통 끝에 말끔하게 숨을 거두는 죽음은 많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세줄짜리 기사엔 자살을 기도한 사람과 불편을 겪은 시민들만 존재하지만, 현실엔 고통받고 자책하는 가족들이 있다. 누군가는 평생 트라우마를 겪는 목격자가 되고, 환자를 살리지 못한 의료진에게는 회한이 남아 현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그는 “삶이 끝나면 고통도 끝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든 죽음엔 상응하는 고통이 따른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고통을 느껴야한다. 그 고통을 넘어가지 않고는 죽음으로 갈 수 없다. 살면서 느낀 고통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남궁 씨는 작년쯤 우울증이 찾아왔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그마저도 수면제 몇알을 쪼르르 늘어놓아 보게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시도조차하지 않았다. 그 참혹한 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나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찾아오는데,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내게 남은 게 뭐라도 있었겠지만 깨달을 수 없는 날들”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에 하필 1500명 정도 되는 응급의학과 의사여서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 실체를 몰랐더라면 모를까 알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한마디는 “너무 뻔한 말이지만 당신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겠지만, 당신을 살려내야 하고 당신이 꼭 살아주었으면 바라는 이들이 여기 응급실에 있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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