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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최후통첩` 내용증명=사건해결?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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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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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8] 변호사 사무실에서 취급하는 업무 중에 내용증명을 작성하고 변호사 사무실 명의로 발송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의뢰인을 대행해서 행하는 업무이다. 자주 오해받는 일이 내용증명을 보내면 이것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줄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렇지는 않다.

내용증명은 우체국을 통해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다.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해서 바로 법적인 효력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다른 편지와 다른 특징이 있다. 다른 우편물과는 달리 내용증명은 발송인, 수신인 그리고 우체국 3자가 각각 동일한 내용의 문서를 소지하게 되는 우편물이다. 이에 따라 발송인이 작성한 어떤 내용의 문서가 언제 누구에게 발송되었는지를 우체국장이 증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용증명' 우편이다. 다른 우편물과는 달리 우체국에 같은 내용의 문서 3장을 제출해야 하는 것도 누가 누구에게 언제 발송했다는 사실 말고도 어떤 내용의 우편물이 발송됐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다.

어떤 우편물이 어떤 내용으로 발송되었다는 게 왜 중요할까?

민사 사건에서 가령 어떤 사유로 언제 계약을 해제하여 그 의사표시가 언제 상대방에게 도달하였는지는 소송의 승패를 가리는 중요한 사실이다. 채권의 소멸시효가 임박한 시점이라면 일단 채권추심의 의사가 담긴 서류를 상대방에게 발송하야만 한다. 그래야 후일 제기한 소송에서 그 서류의 도달 일자로부터 6개월 내에 제기되었으니 아직 권리가 시효로 소멸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형사사건에서도 이런 저런 손해를 입은 피해자로서 피해복구를 위한 성의 있는 답변을 상대방에게 요구했으나 상대방이 전혀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등의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 이때 긴요한 게 바로 내용증명이다. 내용증명 서류를 민사든 형사든 소명자료로 제출하는 경우 상대방 역시 그와 같은 내용의 서류를 언제 받았다는 사실만큼은 다투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내용증명은 어떤 내용의 서류가 언제 상대방에게 도달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지 이것으로 "내용증명에 적힌 내용이 맞는다"는 것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내용증명 우편이 배달되었고 그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해서 내용증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분쟁이 예견되거나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떤 사실 혹은 어떤 주장을 어떤 시점에 했다, 안 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후일 "그런 내용을 고지받지 못했다. 전해 듣지 못했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내용증명 없이 깨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게다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작성한 내용증명을 받은 경우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 통상 변호사가 작성하는 내용증명은 민사의 경우 소장, 형사의 경우 고소장에 준할 만큼의 검토와 증빙서류를 갖춘 상태에서 발송하게 마련이다. 일종의 "최후통첩" 내지 "선전포고"라고 볼 수도 있다. 내용증명이 우편물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냥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그 내용을 보아 신중히 검토할 정도라면 변호사와 상의해볼 일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응대했다가는 변호사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법. 안 해도 좋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답변 내용에 무심코 적을 수도 있고 약점이 잡힐 만한 의사를 밝힐 수도 있게 마련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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