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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문화재의 향기]이육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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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독립투사인 동시에 시인이었던 이육사(본명 이원록·1905~1944)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됐고 감옥에서의 수인번호 264번에서 ‘육사’라는 호를 따왔다고 한다. 원래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에 있던 그의 생가는 지난 1976년 4월 안동댐 수몰로 현재의 위치인 안동시 태화동으로 옮겨졌다.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하게 평행 배치돼 있는데 서로 똑같은 공간을 이루는 점이 특이하다. 1973년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육사 생가 근처에 도산서원이 있고 이육사문학관도 자리 잡고 있다. 이육사는 ‘광야’ ‘청포도’ 등의 시가 유명하지만 문학사적 업적에 비해 전하는 친필원고가 극히 드물다. 그래서 5월 친필 시 원고 ‘편복’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시인데 당시 일제의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한 것이 해방 후 1956년 출간된 ‘육사시집’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최근 이육사의 또 다른 친필 시 원고 ‘바다의 마음’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 바다는 바람에 입김을 분다 / 여기 바다의 은총(恩寵)이 잠자고 있다’로 시작하는 시이다. 그는 시를 통해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고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1월16일 베이징의 일본 감옥에서 순국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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