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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한의사 그만두고 ‘대X강 페일에일' 맥주 개발한 김희윤 더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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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에 빠져 한의사 그만두고 더부스 창업
‘수제맥주 성지’ 미국에도 진출
‘맛있는 맥주’ 목표로 전진...동남아 시장 목표

2012년 서울 이태원에서 작은 펍 하나로 시작해 ‘수제맥주의 성지’ 미국까지 진출한 수제맥주업체가 있다. 바로 ‘대강 페일에일’로 유명한 더부스다. 양조장만 6000개인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것. 글로벌 주류업체 ‘미켈러’ 다음으로 2번째다. 더부스는 오는 9월에는 캘리포니아의 올리버스(Oliver’s), 10월에는 홀푸드(Whole Foods)에 자사 맥주를 납품한다.

"지난 2012년 ‘한국에는 왜 다양한 맥주가 없을까’해서 창업했어요.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라는 기사를 쓴 다니엘 튜더와 애널리스트였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함께 펍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맥주를 수입하기만 했는데, 장사가 잘돼서 한의사도 그만뒀어요. 미국에 공장을 만들고, 수제맥주를 직접 양조하기 시작했죠. 최근에는 미국 맥주축제에 참여하고, 판매도 진행하는데 맛으로 인정받고 있어서 뿌듯해요."

조선비즈

지난 14일 더부스 아모레퍼시픽점에서 김희윤 더부스 대표를 만났다./ 안소영 기자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위치한 더부스에서 김희윤(31) 대표를 만났다. 수제맥주 인기가 올라가며 포브스에서 ‘2017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까지 선정된 김 대표, 그를 만나 수제맥주에 빠진 스토리를 들어봤다.

-한국 맥주가 맛이 없어서 직접 맥주를 만든 건가요.

"맛이 없다기보다는 맛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는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라거 맥주가 많거든요. 해외맥주가 들어오는 시점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을 하는 맥주라서 맛이 독특하다는 느낌은 없었고요.

당시에 저와 남자친구(현재의 남편), 친구인 다니엘 튜더, 셋이 맥주를 좋아해서 자주 맥주를 마시러 다녔는데요. ‘외국에는 다양한 맛의 맥주가 많은데 왜 우리는 없을까’ 이야기를 나누다 셋이서 경리단길에 펍을 내게 됐죠. 수제맥주 레시피를 다른 양조장에 맡기고, 피자집에서 치즈피자와 페퍼로니 피자를 공급받았어요.

가게가 너무 잘돼서 일년 동안 5개 펍을 열었어요. 저는 한의사, 남자친구는 외국계 기업 투자자문사였는데 수제맥주 사업이 너무 재밌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수제맥주를 만들고 유통하는 데 전념하기로 했어요. 현재 저는 한국에서 사업을 총괄하고, 남편은 미국에서 생산을 맡고 있어요. 다니엘 튜더는 투자만 하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고요."

김 대표의 말처럼 수제맥주들이 쏟아지기 전 한국에는 청량하고 목 넘김이 좋은 라거맥주가 더 많았다. 에일과 라거는 발효방법으로 구분하는데, 일반적으로 에일(상면발효)은 묵직하고 풍미가 더 뛰어나고 라거(하면발효)는 가볍고 청량한 편이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말한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출신 다니엘 튜더와 창업을 했는데요. 다이엘 튜더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요.

"아니요.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 친구도 창업을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고요. 당시에 다니엘 튜더의 말이 그리 파급력 있지 않았는데 나중에 굉장히 화제가 되더라고요. 그 덕에 저희가 만든 대강 페일에일이 더 알려지긴 했던 것 같아요"

다니엘 튜더의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한마디는 파급력이 컸다.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가에 수입맥주 판매가 늘어나고 수제맥주 붐이 일었다. 더부스를 알리는 계기도 됐다. 한국 대형 맥주회사들은 "에일맥주와 라거맥주는 만드는 법부터 즐기는 법까지 다른 맥주"라며 "에스프레소를 먹던 사람이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싱겁지 않겠느냐"라고 항변할 지경이다.

-대량생산 맥주와 수제맥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수제맥주는 맥아, 홉, 효모 등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는 편이에요. 특히 저희는 100% 맥아를 사용하는 데다 일부 맥주는 홉을 타맥주보다 3배 이상 넣어서 가격대가 좀 높아요. 일부 대량생산 맥주들은 맛이 나는 첨가물을 넣기도 하고, 자동화 시설이 잘돼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할 수 있는데 수제맥주는 그런 게 좀 어려워요."

수제맥주는 소규모 양조업체가 큰 자본없이 자체개발한 제조법으로 만든 맥주다. 대량 맥주업체가 대량 생산하는 맥주에 대응해 만든 맥주로 각기 독특한 풍미를 지녔다. 더부스는 작은 펍에서 자신들의 레시피를 담아 만든 맥주 하나만 판매하다, 점차 규모를 키우고 맥주 종류도 늘렸다. 현재는 캔, 병에 담아 마트, 편의점 등에도 납품하고 있다.

-수제맥주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무엇인가요.

"대강 페일에일의 슬로건이 ‘우리의 소원은 맛있는 맥주’에요. 맛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죠. 맛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통과정이 되게 중요한 편이에요. 2013년쯤에는 한국에 들어오는 수입수제맥주를 다 먹어봤어요. 이듬해 신혼여행으로 미국에 가서 3주간 수제맥주 200개를 마셨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맛이랑 다르더라고요. 유통과정에서 햇빛에도 노출돼고, 온도도 높아져서 맛이 바뀐 거죠.

그래서 저희는 수입 유통과정과 보관에 있어 100% 냉장 보관을 하고 있는데요. 이 유통 방식은 일반 컨테이너보다 물류비가 2~3배 더 들어서 다른 수제맥주와 비교해도 가격이 높은 편이에요. 실제로 ‘유레카 서울’은 냉장유통을 해야 맛을 살릴 수 있는 맥주라서 저희 매장 7곳 위주로만 판매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의 맥주 감별 실력은 어떨까. 김 대표는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상표를 숨기고 마신 다음 상표를 식별하는 방법)에도 긴장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응했다. 라거맥주와 에일맥주, 국내수제맥주 여러 종이 섞여 있었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을 척척 내놨다. 결과는 모두 정답. "라거와 에일을 구분하고, 홉의 양을 느껴보면 금세 맞출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

-작은 펍에서 시작했는데, 미국에 진출할 정도로 회사가 커졌습니다. 비결은 뭘까요.

조선비즈

더부스의 직영매장과 유통되는 맥주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더부스 제공



"처음에는 경리단길과 수제맥주의 인기, 다니엘 튜더의 인지도 상승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것 같고요. 지금은 맥주마다 각각의 스토리를 담아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 있는 맥주회사들은 다 대기업이라서 연예인으로 광고를 한다거나 페스티벌을 열어서 ‘우리 맥주는 이런 이미지야’라고 알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럴 돈이 없어서 상품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대강페일에일 같은 경우도 ‘대동강 맥주보다 더 맛있는 맥주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대동강 페일에일’로 지었어요. 한국에 들여 왔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대동강 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통관을 안 시켜줘서 ‘동’자에 검열 표시가 된 스티커를 붙이긴 했지만요. 저희가 ‘삿포로 맥주도 베트남에서 만든다’고 주장했는데 통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장기하, 노홍철 등 유명 연예인과, tvN, 72초 TV 등 매체와도 협업해 맥주를 만들었어요. ‘긍정신 레드에일’은 노홍철씨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만만한 맥주’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홉의 양을 줄이고 맥아맛을 강조한 고소한 맛을 냈어요. 마시는 순간 긍정신과 접신하여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준다는 스토리도 담았어요. 배달의 민족과 손잡고 만든 맥주 ‘치물리에일’도 있고, 성소수자 단체에 일부 수익금을 기부하는 맥주 ‘엘지비티큐’도 있어요."

-힘든 점은 없나요.

"수제맥주 시장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시장이 커지는 속도보다 새로운 수제맥주 업체가 생기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요. 주류는 또 온라인 판매가 안 되니까, 기존 대형유통사들을 뚫고 유통망을 넓히기 힘든 점도 있어요. 저희와 다르게 중국은 주류 온라인 구매가 가능해 수제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거든요. 과거와는 다르게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원하는 맥주를 구매하기는 어려운 거죠. 요즘에도 ‘치믈리에일 먹고 싶은데 어디서 팔아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전자상거래(e커머스)를 바라고 있는데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는 적은 것 같아요."

-대강페일을 제외한 더부스의 수제맥주는 미국에서 생산해서 가져오는 건가요. 최근에는 미국에서 유통도 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대강 페일에일은 미켈러라는 브랜드와 콜라보를 해서 벨기에 공장에서 수입을 해서 가져오고 있고 나머지는 미국에서 만들어요. 처음에는 판교에서 양조장을 했는데, 규모가 작고 좋은 재료나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2016년에 시장규모도 크고, 더 좋은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미국에 공장을 세우게 됐어요.

올해 초부터는 벨기에에서 생산하는 대강페일에일을 제외한 맥주들을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납품하기 시작했어요. K팝, K푸드의 인기가 많아서 한국인이 만든 수제맥주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저희 맥주에 한글로 이름이 쓰여있는걸 아주 신기해합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수제맥주가 아마존 홀푸드에 들어가는 경우 잘 없는데 유통한 지 반년 만에 국민 IPA와 유레카서울이 홀푸드에 들어가게 됐어요."

-상품 출시계획 등 단기적인 계획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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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스가 판매하고 있는 맥주./ 더부스 제공



"저희가 꾸준히 만드는 맥주는 5가지 종류에요. 그 외에 새롭게 만든 맥주를 한정 판매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다양한 맛도 보고, 재미도 느끼라는 의미에서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상품을 시도해볼 거예요. 일단 내년에는 밀맥주를 출시하려고 해요.

저희가 진행하는 수제맥주 페스티벌 ‘더 비어위크 서울’도 더 규모를 키울 계획이에요. 지난 5월에 6일간 열린 행사에 2만6000명이 왔었는데요. 더 많은 맥주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맥주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앞으로는 어떤 기업이 되고 싶나요.

"미국에서 인정받은 뒤,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동남아는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시장이거든요.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아서 관심도 많을 것 같아요. 팀원들도 좀 더 재밌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동남아, 한국, 미국에 모두 사무실을 가지고 팀원들도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 꿈이에요. 2030년 정도에는 글로벌 50위 안에 드는 수제맥주회사가 되고 싶어요."

안소영 기자(seenr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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