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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명절 앞 더 두려운 설탕…정말 우리의 ‘주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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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설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고칼로리 식단 건강 위협 증명됐지만

‘설탕에 지나친 책임 씌우는 건 불합리’ 지적도

30여개국, 콜라 등 탄산음료에 설탕세 도입

BBC “금기 태도가 더 유혹적으로 만들수도”

WHO “설탕 섭취, 에너지 섭취량의 5%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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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갈비찜, 모둠전이 차려진 명절 식탁에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시원한 식혜로 입가심하고 나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온다.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이 음식의 칼로리는 얼마일까.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었나. 알게 모르게 대부분의 음식에 설탕 혹은 설탕을 대체하는 재료가 들어간다. 설탕을 피하고 싶어도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설탕이 ‘현대인의 적’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설탕에 세금(sugar tax)을 매긴다. 핀란드와 헝가리는 2011년부터 기준치 이상의 설탕이 들어간 일부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 4월부터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매긴다. 현재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거나 부과하기로 한 나라는 최소 30개국이다. 한국에서도 비만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먹방’ 규제 논란이 일고, 설탕세에 대한 논의도 여러 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단에서 설탕을 치우라고 조언하고, 학교에선 음료 자판기가 사라졌다.

설탕은 어쩌다 ‘적’이 된 걸까. 그리고 설탕은 정말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걸까? <비비시>(BBC) 방송은 최근 ‘설탕은 정말 우리에게 나쁜 것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설탕의 ‘억울한’ 사정을 들여다봤다.

■제대로 알아야 하는 설탕

8만년 전 인류와 새는 설탕을 놓고 경쟁했다. 당시 인류가 단맛을 느끼는 통로는 오로지 과일이었다. 1년에 단 몇 개월만 당분 섭취가 가능했다. 16세기까지는 부자들만 설탕을 살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하면서 설탕이 좀 더 대중화됐다. 1960년대에는 값싸고 단맛이 강한 액상과당이 만들어졌다. 1970년에서 90년대 사이에 미국에선 액상과당 소비가 10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인들의 비만이 증가한 원인들 중에서도 설탕이 제1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설탕 유해론’이 출발했다. 액상과당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를 차단하기 때문에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과식을 유도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양학계에선 탄산음료를 통해 설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는 조사가 활발히 진행됐다. 88개의 연구를 토대로 한 메타 분석 결과에서 설탕이 든 음료와 체중은 분명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음료가 배고픔을 증가시키거나 포만감을 감소시켜 사람들이 음료 외에 다른 음식(에너지원)을 섭취하도록 돕는다는 뜻이었다.

■설탕은 정말 ‘나쁜 것’이었나

설탕이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널리 퍼져있다. 설탕은 몸속에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으로 간에 저장되는데, 이때 결과물로 축적되는 지방의 종류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동맥경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한 연구에선 매일 칼로리의 25% 이상을 설탕으로 섭취한 사람이 칼로리 10% 이하로만 설탕으로 섭취한 사람에 비해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2형 당뇨병 또한 설탕 섭취가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루에 한 잔 이상 탄산음료나 과일주스를 마신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2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그러나 설탕 자체가 정말로, 얼마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소수의견’이 꾸준히 나온다. 설탕이 건강 문제의 주범이라는 주장과, 다른 모든 음식처럼 설탕도 과잉 섭취를 할 경우가 문제라는 주장이 맞선다. 루크 태피 스위스 로잔대 생리학과 교수는 당뇨와 비만, 고혈압의 주원인은 고칼로리이며, 설탕은 단지 고칼로리를 가진 한 요소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다. 그는 “에너지 소비량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면 장기적으로는 무엇을 먹든지 지방이 축적되고,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며, 지방간으로 이어진다”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에 맞는 에너지 섭취량을 가진 사람들에겐 높은 과당·설탕 식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태피 교수는 운동선수들이 당분 섭취량은 훨씬 높지만 그들의 심혈관 질환 비율은 현저히 낮다고 했다.

<비비시>는 이 분야 연구진 모두가 설탕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비만율은 계속 증가세이지만, 지난 10년간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설탕의 소비가 감소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기됐다. 오스트레일리아나 유럽 등 음식에 넣을 수 있는 설탕 허용 기준치가 낮은 곳에서조차 비만과 당뇨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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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중독? 아니면 설탕 효과?

지난해 영국 스포츠 의학저널이 발표한 연구를 보면, 실험용 쥐에게 설탕을 먹였을 때 코카인과 비슷한 효과의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증거를 잘못 해석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비판의 한 이유는, 실험용 쥐에게 설탕이 하루 2시간씩만 제공됐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무 때나 설탕을 섭취할 수 있는 것처럼 실험용 쥐에게도 언제든 설탕을 먹게 했다면 중독 증상은 없었을 것이란 반박이 나왔다.

다른 연구진은 설탕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증명하려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윈번의 인간신경약리학센터 매슈 파세 선임연구원은 자가보고된 탄산음료 소비량과 엠아르아이(MRI) 검사에서 나타나는 뇌 건강 지표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결과를 보면, 탄산음료나 과일주스를 더 자주 마신 사람은 뇌의 부피 평균이 작고 기억 능력이 떨어졌다. 하루에 탄산음료와 과일주스를 2잔씩 마신 사람과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니, 주스를 마신 집단에서 두뇌 나이가 평균 2년 더 노화된 것으로도 드러났다. 그러나 파세는 “음료 섭취량만으로 설탕이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탄산음료나 과일주스를 더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뇌 건강과 관련된 다른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을 공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또 다른 관점의 연구 결과도 등장했다. 설탕이 나이 든 성인의 기억력과 뇌 기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발표였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 소량의 포도당이 든 음료를 주고 기억력을 발휘할 과제를 제시했다. 또 다른 그룹 참가자들은 인공감미료가 든 음료를 마시고 같은 과제를 수행했다. 포도당이 든 음료를 마신 집단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고,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것에 동기 부여가 됐음이 확인됐다. 또 혈당 수치가 증가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면서 더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젊은 성인 참가자들은 포도당이 든 음료를 마신 뒤 에너지가 증가했지만 기분이나 기억력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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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칼로리의 10%라는 가이드라인…문제는 설탕이 아니라 많이 먹는 것?

세계보건기구(WHO)는 설탕이 일일 칼로리 섭취량의 10% 이상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5%대(25g)로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6년에는 비만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각국에 20% 세율의 설탕세 도입도 권고했다.

그러나 다이어트 전문가인 르네 맥그리거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단은 모두에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설탕을 금기시하는 것은 오히려 더 유혹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지적한다. 설탕에 대한 논란이 확대될수록, 당분이 포함된 건강한 음식과 필수영양소가 부족한 건강하지 않은 음식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위험이 커진다고 짚었다.

어쩌면 문제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설탕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과자 봉지를 뜯고, 탄산음료 병뚜껑을 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설탕을 ‘넘치도록’ 섭취할 수 있다. 얼마만큼 먹는지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설탕에 대한 ‘오해’를 없앨 수 있다. 250㎖짜리 탄산음료 캔 하나엔 약 27g의 당이 들어있다.

<비비시>는 식단에서 설탕을 완전히 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잠재적으로 칼로리가 더 높은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설탕이 건강을 망친다고 여겨 고단백·고지방 채식주의 식단만 추구한 28살 스웨덴 여성 티나 그룬딘은 결국 섭식장애를 얻은 뒤 설탕을 섭취하는 식습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비비시>에 “나는 모든 형태의 설탕을 두려워하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설탕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과일과 채소, 곡물과 콩과 식물에서 발견되는 천연 당분을 먹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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