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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놀림·눈총 없이 꿈꾸는 교실…“다름을 장점으로 키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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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 기숙형 기술고 ‘제천 다솜고’

경향신문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해 충북 제천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도입국 청소년’들. 왼쪽부터 윤성희양, 정재호·박보성·손우훈군. 다솜고는 전국 유일의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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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취득 못해도 입학 가능해

기계·설비·전기 기술 키우며

방과 후엔 자격증·한국어 수업

졸업생 80%가 대입·취업 성공해

군부사관·작곡가 등 꿈도 다양


지난 20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 ‘위잉~’ 거친 쇳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한 작업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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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과 3학년 정재호군이 그라인더를 이용해 금속을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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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시공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학생들이 금속을 용접하거나 다듬는 수업을 배우는 곳이다. 그라인더를 능숙하게 다루는 한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그라인더를 들자 사방에 불꽃이 튀었고, 울퉁불퉁했던 금속 표면이 말끔하게 변했다. 3학년 설비과에 재학 중인 정재호씨(21)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베트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2011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가족들과 한국에 들어왔다.

정씨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하는 청소년들은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불린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8년 교육기본통계’ 조사 결과를 보면 9~24세 초·중·고에 재학 중인 다문화 청소년은 12만2212명이다. 이 중 중도입국 청소년은 약 6.8%인 8320명이다. 중도입국 청소년 대부분 한국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를 못해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2년 더 다녀야 했다는 그는 “어른들로부터 ‘외국에서 왔느냐?’고 질문을 받는 등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중학교 때 고교 진학으로 고민을 하다 나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다솜고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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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과 2학년 박보성군(왼쪽)이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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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개교한 다솜고는 전국 유일의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면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어도 입학이 가능한 곳이다. 현재 기계과와 설비과, 전기과 등 세개 학과에서 청소년 132명이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다. 방과후에는 학과별 자격증 취득 수업과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수준별 한국어 강좌가 열린다. 귀화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의 이해’라는 수업도 진행된다.

정씨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해군 부사관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 또 특수용접과 전기용접 등 두개의 자격증도 땄다. 그는 “해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며 “해군 부사관이 되면 제복을 입고 당당하게 부모님께 경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와 같은 학년인 손우훈씨(19·전기과)는 이 학교에서 철도전기신호기능사, 전기기능사, 승강기기능사, HSK 6급, 한국사 1급 등 자격증을 5개나 취득했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2011년 부모와 한국으로 이주한 그는 “다른 친구들이 놀 때 자격증 공부를 했다”며 “한국인이니까 좋은 회사에 취직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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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고 학생 부모들의 국적은 러시아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13개국에 이른다. 하지만 학생들은 한국 국적이거나 귀화를 준비 중이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한국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받는 불이익도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윤성희양(18·다솜고 2년 기계과)도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비와 기숙사비가 무료인 다솜고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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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과 2학년 윤성희양이 미술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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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은 “어렸을 때 피부색이 달라 놀림받거나, 외국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아 상처도 많았다”며 “이곳에는 놀림과 관심이 없어 좋다”고 했다. 이어 “빨리 취직해 엄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다”면서 “취업 후 돈을 모아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유럽여행도 가고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보성군(18·다솜고 2년 설비과)은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그는 영상제작과 작곡에 관심이 많다. 교내 축제와 체육대회 등의 영상을 직접 촬영하기도 한다. 박군은 한국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엄마의 바람처럼 대학에 진학해 영상과 작곡 중 하나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다솜고는 올해 2월까지 4회 졸업생 165명을 배출했다. 이 중 80%는 졸업 직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성공했다. 나머지 33명의 졸업생은 현행 관련법이 걸림돌이다. 이들 대부분은 중도입국 청소년들로 귀화 시험에 합격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 6개월에서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솜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다문화 2세 모델 등 이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다문화 2세라는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다솜고에 졸업한 뒤 사회에 진출해 나는 더 특별하고,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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