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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전주 떡집·의정부 도넛집도 "이런 추석 처음···경기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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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명절 전통시장

직원 둘 쓰던 떡집 올핸 혼자 장사

시장명물 700원 도넛조차 안 팔려

쉴틈 없던 미용실도 낮엔 손님 뚝

소비 위축, 온라인 쇼핑 증가 영향

중앙일보

같은날 경기도 의정부시 제일시장 안에 있는 도넛 가게. 손님들이 줄을 늘어서던 명물 가게인 데도 한산하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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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 제일시장은 ‘경기 북부 최대 규모 전통시장’이라는 별칭이 있다. 이곳 가장 명물은 ‘즉석 도넛 명가’라는 간판의 노점이다. 조선호텔과 신세계그룹에서 13년간 조리사 경력을 쌓은 제빵 전문가가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도넛을 시중가 절반인 개당 700원에 판다. 언제 가도 긴 줄을 설 것을 각오해야 하는 곳이다.

지난 18일 오후 찾은 이 가게에는 구입 행렬이 없었다. “튀겨내기 무섭게 팔린다”던 도넛을 사려는 이는 드문드문 찾아왔다. 주인 김정광(43)씨는 “이런 추석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하루 매출이 55만원이었다. 올해는 40만원 달성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싼 값에 부담 없이 사 먹는 도넛에도 지출을 줄일 정도니 서민 살림살이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전북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전동 남부시장에서도 비슷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남부시장은 한 해 1000만 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8년 대표 전통시장’으로 선정한 곳이다. 하지만 시장 골목이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떡집 ‘종로상회’를 운영하는 김순희(64·여)씨는 “경기가 20년 만에 최악”이라고 했다. 김씨는 “예전엔 집집마다 시루떡과 송편 등을 반 말(8㎏)씩은 사 갔는데 올해는 1~2㎏밖에 안 산다”고 했다. 김씨는 “예전엔 명절 대목이 아니어도 직원을 두 명씩 썼는데 올해는 추석 전날 하루만 아줌마 한 명을 10만원 주고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들 공부 다 시켰기에 망정이지 요즘 같으면 자식들 학교도 못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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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반송시장.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평일처럼 오가는 이가 없어 한산하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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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반송시장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김모씨는 “IMF 때도 이렇게 손님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시장 인근에서 미용실을 하는 박모(58·여)씨는 “예전에는 추석 대목이면 한 보름 정도는 쉴 시간도 없이 손님을 받아야 했는데 올해는 낮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고 밤에 두 세 명 정도 오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추석 대목이 사라졌다. ‘서민 경제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전국 전통시장에는 추석 경기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비 심리 위축은 각종 경기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8월 실업자 수는 113만명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 1월부터 8개월 연속, 100만 명을 넘겼다. 전체 실업률도 0.4% 올랐는데, 만 15~29세까지의 청년 실업률 역시 10%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여기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일자리를 얻기가 더 힘들어지면서 급격한 소비 위축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쇼핑의 중심이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대형마트에서 다시 온라인 쇼핑으로 옮겨지는 등 소비 패턴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발표한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올 7월 전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9조456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엔 7조7077억원이었다. 한 해 사이에 온라인 쇼핑 구매액이 22.7%나 늘어났다. 내수가 크게 늘지 않는데 구입 경로는 온라인에 몰리니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체감경기 악화는 상인 목소리 외에 지역 기업들에서도 확인된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지역기업 265개사를 대상으로 ‘2018년 추석 경기 동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77.4%가 “지난해 추석보다 경기가 악화했다”고 답했다. 부산경영자총연합회가 부산지역 주요기업 13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응답기업의 58%가 “전년보다 악화”라고 답했다.

박주완 부산경영자총연합회 상임부회장은 “지난해 추석 경기 조사 때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올해는 체감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경영 여건의 변화가 지역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의정부·창원·전주=전익진·위성욱·김준희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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