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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경제포커스] 절대 채택 안 될 '미친 집값'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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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도 프레임 전쟁… '다주택자=투기꾼' 退路 차단

공급 대안 '수직 고밀도' 개발, 江南 부자 배불리기라고 배척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부장


'프레임(frame)'은 세상을 해석하는 창(窓)이다.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의 재생산 과정인 '의식화'는 프레임 교체 작업이었다. 세상 보는 눈을 바꿔 투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식(移植)된 세계관, 가치관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경제 분야에서도 프레임 전쟁이 펼쳐진다. '창조 경제'가 '소득 주도 성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부동산 분야에선 '한겨울 여름옷'(최경환 전 부총리가 과도한 부동산 규제를 지칭한 말)이 '투기꾼과 전쟁'으로 바뀐다.

문재인 정부가 9·13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놨다. 이번 대책도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을 입안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총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정부 대책 발표 하루 전,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주택 부족은 총량이 아니라 서울 도심에 양질 주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해제보다 서울 도심의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정상화해 양질의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현 수석의 회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주장은 변절이다.

"(노무현 정부 대책 회의 때) 김병준 정책실장이 건교부가 원했던 강남 대체를 반박했다. '강남은 공룡이다. 그 공룡에다가 소 몇 마리 먹으라고 던져준들 공룡은 배가 차지 않는다. 우리가 국가 균형을 이야기하면서 수도권 균형은 왜 생각 안 하느냐? 급하다고 이걸 먹으면 안 된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에 반대했다."('대한민국 부동산 40년')

하지만 김 위원장의 변신은 '교조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념 편향 '프레임'으로는 현실 문제를 푸는 선택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9·13 대책은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고 세금으로 괴롭혀 매물을 내놓게 하겠다는 발상이라는 점에서 2017년 '8·2 대책'의 판박이다.

최근의 '미친 집값' 사태는 매물 절벽이 길어지고, 공포에 사로잡힌 무주택자들이 앞다퉈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주택 시장의 가격 왜곡을 해결하려면 거래 절벽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러자면 다주택자들에게 일시적 양도소득세 감면 등 당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투기꾼' 프레임에 갇힌 문 정부는 이 해법을 결코 선택할 수가 없다.

또 미친 집값을 잡으려면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자면 김병준 위원장 주장처럼 발상을 전환해 재건축 규제를 풀고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 서울 도심을 '수직 고밀도'로 개발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울 강남 부자들 배만 불릴 뿐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모두가 원하는 입지에 새 아파트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해법은 이것뿐이다. 새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면 기득권을 희석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 해법 역시 이 정부의 프레임상 곁눈질할 수 없는 카드다.

여권 일각에선 '금리 인상'을 거론하지만, '전(前) 정권 탓하기' 용도일 뿐이다. 핵심 지지층인 서민층이 1차 피해자가 되고, 가계 부채 폭발이란 '덤터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는 이 카드도 쓰지 못할 것이다. 결국 유용한 해법들은 진보 진영 '프레임'상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교조주의자들에게 일침을 놨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 현 정부가 교조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친 집값'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김홍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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