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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르포] 뽀롱이의 비극… 인간 실수에 퓨마 가족은 어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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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이튿날인 19일에도 대전 ‘오월드’ 동물원은 개장했다. 퓨마 사육장도 개방됐다. 전날 어미를 잃은 4살 수컷 퓨마 ‘황후’가 340㎡(약 103평) 사육장 좌우를 반복해서 오갔다. 잠시도 앉아있지 못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은 "동물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동물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반대로 또 다른 암컷 새끼 ‘해라’는 미동 없이 앉아만 있었다. 동물보호단체 ‘행강’ 박운선 대표는 "어미가 사라지자 새끼들이 ‘분리 불안’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사육장 바로 앞에 모여서 "이게 어제 (사살된) 그 퓨마의 새끼"라면서 웅성거렸다. 이날은 가을 소풍을 맞은 초등학생이 특히 많았다. 소풍으로 오월드를 찾았다는 최석현(9)군은 "퓨마를 보는 건 좋은데, 갇혀있는 모습은 불쌍하다"고 말했다.

맹수 탈주사고가 벌어진 대전 오월드는 동물원과 놀이동산, 화원 등이 함께 있는 중부권 이남 최대 규모 종합테마공원이다. 총면적은 78만3897㎡(약 24만평), 동물원 크기만 60만8283㎡(약18만 4000평)에 달한다. 이곳은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표범, 반달가슴곰, 유럽 불곰 138종류, 940마리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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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오월드 퓨마 사육장. 지난 18일 탈출한 퓨마는 사육장의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뒤편 산으로 탈출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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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 사육장은 오월드 ‘중형육식사’에 자리 잡고 있다. 내부는 콘크리트 없이 흙과 나무, 풀숲으로 자연과 가까운 환경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사육장이 동물원 외곽에 있어 바로 뒤가 보문산이다. 대전 시민 김유석(28)씨는 "오월드 뒤편 보문산을 넘어가면 주택가 인데, 퓨마가 산을 넘어 시내로 향했다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퓨마 사육장 ‘한 달 폐쇄’, 퓨마 사체는 소각할 듯
사살된 어미 퓨마 ‘뽀롱이’는 2010년 경기 과천시 소재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다. 대전 오월드로 옮겨온 것은 2013년으로, 이 해에 수컷 퓨마 ‘금강’과 짝을 이뤘다. 이듬해 두 마리 새끼를 출산하면서 대전 ‘퓨마가족’은 네 식구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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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대전 중구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가 우리를 탈출해 포획에 실패해 사살한 뒤 동물원 내 동물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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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퓨마 탈출은 사육사가 ‘깜빡’하고 사육장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나선 금강유역환경청은 이날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오월드에 퓨마 사육장 1개월 폐쇄 처분 등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부 전시 사육장을 폐쇄하는 조치라, 나머지 퓨마 가족 3마리는 그대로 같은 사육장에서 생활하게 된다.

담당 사육사는 오월드 측의 자체 징계조치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청 관계자는 "환경청은 사육사 처벌 권한이 없어서 오월드 측에서 자체 징계할 계획"이라면서 "맹수 탈출 사고지만 인명피해가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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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사육장을 탈출한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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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관리로 맹수 탈주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는 사육장을 탈출한 시베리아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했다. 경찰 조사결과, 사육장 내실(內室)과 전시장 사이에 있는 '호랑이 문'이 잠겨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호랑이 탈주의 원인을 총체적 관리부실로 규정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동물원장 등 대공원 간부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오월드를 운영하는 대전도시공사의 유영균 사장은 이날 "대전시 감사관실이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퓨마 사육사 등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사살된 암컷 퓨마 ‘뽀롱이’ 사체는 현재 오월드 내 냉장시설에 보관되어 있다. 통상 사체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관할 환경청에 신고한 뒤, 동물 사체처리 전문업체에 맡겨 소각 처리된다. 이번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신완호 금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주무관은 이날 오후 4시쯤 "동물 사체가 위탁업체에 인계돼 소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늦은 오후 국립중앙과학관이 "사체를 교육용 표본(박제)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대전도시공사에 전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각이 아닌 보존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 것.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교육용으로 활용되는 만큼 뽀롱이 사체를 (박제용으로) 기증하는 방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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