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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Startup’s Story #434] 고객 100명의 집을 찾아간 면도기 스타트업 ‘와이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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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열 중 일곱은 오프라인에서 면도기를 산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결과다. 길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편의점, 마트, 드럭스토어 등 어디서든 쉽게 면도기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물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틈새를 찾기 어려운 이 아이템을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그것도 아주 잘 팔고 있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바로 면도기 스타트업 ‘와이즐리(Wisel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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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즐리 김동욱 대표



■ 세계 1등 면도기 회사 출신이 만든 스타트업


와이즐리는 재밌게도 세계 1등 면도기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 출신이 창업했다. 한국피앤지에서 마케팅,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소비재 분야를 다뤘던 김동욱 대표가 주변의 유능한 인재를 모아 팀을 꾸렸다. 전영표 이사는 피앤지 시절 동료로 재무기획과 영업기획을 맡았었고, 김윤호 이사는 구글코리아에서 마케팅과 영업 업무를 했다. 기획-재무-영업의 삼박자를 맞춰 이들이 풀어내고자 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맨날 써야 하는 면도기인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

그렇게나 비싼가요?

평균적으로 남성이 1년에 면도기 구매에 들이는 돈은 6~10만 원이에요.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아끼기 위해 면도날을 오래 갈지 않거나 일회용 면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어요. 관련 업계에서 일하며 면도기의 제조 원가가 5% 이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나머지 마케팅과 유통에 들어가는 돈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인거죠. 가격을 더 낮출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성으로서 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가격이 싸다’는 것이 와이즐리의 핵심 경쟁력인가요?

가격 문제만 해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제품들에 지지 않는 좋은 품질의 면도기를 3분의 1 가격에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에요. 품질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좋은 면도날을 생산하는 겁니다. 칼의 도시 독일 졸링겐에서 100년간 면도날만을 만든 OEM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월마트, 테스코 등 대형 유통사들의 PB(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곳이죠. 그곳의 면도날은 한국에서 와이즐리가 독점 유통하고 있어요.

스타트업이라서 아직 보여줄 만한 수치가 없었을 텐데, 제조사를 설득하기도 쉽지는 않았겠어요.

제안하고 2년간 기다렸어요. 답이 올 때까지 콜드 메일(Cold-emailing)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안 오면 링크드인으로 관계자 연락처를 다 찾아 ‘이 사업을 꼭 하고 싶으니 담당자 좀 연결해달라’고 요청했죠. 조금씩 반응이 오더라고요. 계속 상황을 업데이트 해주다 보니, 우리 사정에 맞게 최소 수량도 낮춰서 납품해주기로 약속을 해줬어요.

면도날 이외의 부분은 어디서 생산하고 있나요.

면도기 핸들은 한국에서 직접 제조합니다. 와이즐리를 시작하기 전에 시험 삼아 ‘스퀘어쉐이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수요 측정 단계였기 때문에, 타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사다가 포장만 해서 팔았죠.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한 동시에, 고객들이 제품의 마감이나 외형에 의외로 더 민감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직접 금형을 제작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금형은 한 번 제작할 때 억 단위의 자금이 들어가요. 그 이후에도 7~10번 정도의 수정이 있었고요.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고객 피드백을 적용해 지금도 개선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밀착 면도 밀착 소통, 와이즐리의 온라인 마케팅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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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즐리 광고 게시글에 달린 댓글과 답변



좋은 파트너를 만나 품질을 높였으니, 그다음 문제는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와이즐리는 마케팅과 유통 비용 절감을 위해 온라인 판매를 선택했다. 와이즐리의 면도기는 오직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중간 유통 플랫폼을 거칠 경우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5% 이상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온라인 몰에 입점하는 이유는, 자사 채널로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와이즐리는 댓글에 일일이 답하고, 고객의 집을 직접 찾는 ‘밀착 소통’을 통해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주요 마케팅 창구가 SNS입니다. 페이스북 광고 게시물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와이즐리만의 온라인 마케팅 전략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면도기를 우리 사이트에 와서 사는 것은 불편한 일이에요. 치약 같은 생필품을 사려면 오프라인 매장이나, 오픈마켓에서 사지 치약 브랜드 사이트를 가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장벽이 있는 반면 장점도 있습니다. 직접 고객과 만나다보니 소통할 기회가 많아요. 우리는 소통의 제1원칙을 ‘사람과 대화하듯이 응대하기’로 정했어요. 보통 광고 게시물에 그렇게 많은 댓글이 달리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모든 댓글에 다 답변해드렸어요. 정말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이름도 부르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도 하고요. 딱딱해질까봐 일부러 응대 매뉴얼을 따로 만들지 않았어요. 한 번은 자기 블로그에 ‘몇 번 쓰니 면도기가 부러졌다’는 후기를 남긴 분이 계셨는데, 저희가 보고는 부러졌으니 바꿔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고객 과실이든, 제품 불량이든 부서지면 아쉬운 건 마찬가지니까요. ‘대한민국에 이런 회사가 있다니, 많이 팔아달라’고 추가 후기를 또 남기셨더라고요.

직접 고객을 만나본 적도 있나요.

직접 고객에게 전화도 많이 해요. 대형 마트를 통해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대기업은 할 수 없는 일이죠. 초기에 제가 직접 고객 백 명 정도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의외로 굉장히 반가워 하십니다. 한 시간 넘도록 제품 후기를 들려주시기도 하고요. 본인이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고객의 집을 방문하면 어떤 것들을 알 수 있나요.

일단 직접 방문해서 보면 나중에 우리 고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의 생활 패턴이 어떤지에 대해 상상해보는 데 도움이 돼요. 자취방 화장실은 좁잖아요. 그럼 면도기를 녹슬지 않게 세면대에 걸쳐두거나 변기 위에 반만 걸쳐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보고 면도기 거치와 보관에 불편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지금 와이즐리의 제품은 등면을 평평하게 만들었어요. 편하게 어디에나 둘 수 있도록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타깃으로 한 홍보 활동은 한 적이 없나요.

저희의 주요 고객층은 ‘평범한 남성’이에요. 남초 커뮤니티 중에서도 쇼핑에 관심이 많은 남성이 모여있는 곳들이 있어요. 이런 곳에는 쇼핑 할인 정보가 굉장히 빨리 뜨거든요. 정보도 빠르고, 할인 쿠폰 사용 노하우같은 것도 많으셔서 오히려 저희 주요 대상층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유니레버가 인수한 미국의 달러셰이브클럽을 벤치마킹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버려야 했는지 궁금해요.

그들에게 배운 것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신뢰감 있는 방식으로 제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통사들의 PB 상품들을 보면, 패키지도 조악하고 품질도 미묘하게 떨어졌어요. 이 때문에 가격이 싼 건 품질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편견이 생겼죠. 달러셰이브클럽과 같은 모델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패키지도, 품질도 고급스러워 신뢰를 줍니다. 와이즐리에도 이를 적용했고요.

반면 한국에서는 ‘정기배송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국내 고객들은 정기배송에 익숙하지 않아요. 일단 북미 고객처럼 새로운 개념을 경험해보는 데 적극적이지 않고, 지리적으로도 차이가 있어요. 미국은 마트를 가려면 10분 이상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그렇질 않잖아요. 저희도 처음엔 정기배송 모델만 있다가 단품 구매 요청이 많기도 하고, 한 번 구매하시고 취소하시는 분들이 많아 모델을 바꿨어요. 지금은 첫 구매 고객에게는 일단 단품 구매를 하시고, 만족할 경우에 정기 배송을 신청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 면도기 스타트업의 대표 주자 되겠다

달러셰이브클럽이 이름을 날린 후, 국내에도 수많은 면도기 스타트업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누구나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주도권을 선점하기는 어려운 사업. 현재 생존한 면도기 스타트업 중 단연 월등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와이즐리는 미래에 대한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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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면도기 이외의 제품으로도 라인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요.


현재 면도 젤과 애프터셰이브 로션을 개발하고 있어요. 면도기뿐 아니라 남성 그루밍 제품 중 가격 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제품들로 영역을 넓혀나갈 예정입니다. 남성 뷰티 제품의 경우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어요. 화장품 기업들도 보통 여성 라인에 옴므(Homme)를 붙여 서브 브랜드 형식으로 출시를 합니다. 현재 해외에서 소수의 남성 브랜드들이 들어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불합리한 시장 구조를 고치고 고객들이 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여성을 위한 제품도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미 와이즐리 면도기를 쓰시는 여성 고객들이 있어요. 여성 고객도 면도기의 품질과 가격 면에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레이저 제모가 대중화되어 있어서, 면도 인구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저희의 우선순위에서는 좀 미뤄두고 있습니다.

레이저 제모를 받는 남성의 수도 늘어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지 않나요.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레이저 제모를 원하는 남성 인구는 굉장히 낮아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또 ‘6개월 뒤에 어차피 날 건데, 뭐하러 하냐’는 분들도 많고요.

해외 진출 계획도 있나요.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아시아권 국가의 남성들이 겪는 문제가 비슷하거든요.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에서는 소득 수준은 더 낮지만, 현지 기업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같은 가격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아서 더 비싸게 느껴지고요. 향후 이런 틈새를 와이즐리가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와이즐리의 단기, 중장기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지금 집중하는 목표는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로는 고객 경험을 더 좋게 만드는 거예요.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따끔한 피드백이 많아요. 이를 반영한 아예 새로운 버전의 면도기를 내년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가격은 절대 올리지 않아요. 현재의 패키지를 들고 다닐 수 있는 면도날 케이스나 에코백으로 바꿔서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계획이에요. 두 번째로는 브랜드를 더 많이 알려서 더 많은 고객을 만나고 싶습니다. 온라인으로 마케팅 하다 보니 아직 인지도는 부족한 편이지만, 매출 1위의 면도기 스타트업으로 성장해나가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글: 정새롬(sr.jung@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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