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비리 따라가면 종착지는 ‘전관예우’
모두가 겁내는 ‘승진 포기한 판사’ 많아져야
강주안 사회에디터 |
판사에 대한 동정론은 찾기 힘들다. 검찰이 특히 가혹하다. 법원 예산을 다른 용도로 쓴 행위를 검찰 간부는 ‘비자금 조성’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거친 표현을 두고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그만큼 검사들이 판사들에게 쌓인 게 많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재판기록과 씨름하는, 고단하고 엄격한 생활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수도승처럼 살았다는 그들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세상에 귀를 닫은 게 문제다. 한 고위 법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재판과 사법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고나 할까. 이런 현상이 엘리트 의식에서 빚어진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 변호사는 몇 년 전 사법연수원에서 대법관의 강연을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언론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분들은 학교에서 1, 2 등을 했지만 3, 4 등을 했던 친구들이 기자가 됐기 때문에 법조인에 대한 자격지심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니 항상 기자들을 조심하세요.” 나이를 먹고서도 학창시절 성적을 얘기하는 사람은 판사 이외엔 별로 없다.
승진 욕망이 화근일 가능성은 더 크다. 이번 비리의 중심부는 법원행정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과한 욕심을 냈다고 해도 엘리트 판사들이 가담한 동기는, 인사에 대한 집착을 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법원의 서열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쓴 『판사유감』에도 잘 나와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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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을 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밉보였다가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압박했을 수 있다.
판사의 승진 욕망을 따라가 보면 돈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전관예우’다. 법원에서는 전관예우가 사라졌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승포판’이라는 말이 있다. ‘승진을 포기한 판사’의 줄임말인데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근무태도가 불량한 골칫거리 판사로 묘사돼있다. 그런데 승포판은 대형 로펌에게 기피대상이라고 한다. 승진에 괘념치 않고 평생 재판만 하겠다는 ‘선의의 승포판들’에겐 전관의 입김이 잘 안 먹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승포판에게 배당되면, 승진에 불을 켠 판사가 오기를 기대하며 다음번 인사 때까지 재판 지연 전략을 쓰기도 한다. ‘전관’ 출신 변호사는 법원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에 승진지향적 판사가 맡아야 안도한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엘리트 판사들에게 대형 로펌은 퇴직 후 유력한 일터다. 공정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 사법부가 ‘개인 차원의 헷지 전략(individual hedge)’이 나타날 수 있는 구조라고 분석한다. 로펌 출신인 이 교수는“회사의 경영자는 철저하게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전략을 취해야 하지만 경영자 자신의 미래에 관심이 더 크기 때문에 실제로는 회사에 해가 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사법부에 적용하면 판사들도 자신의 앞날을 위해 로펌이나 ‘전관 변호사’와 타협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승승장구해온 법관이 언제라도 로펌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재판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법조일원화·법관2원화·평생법관제 등 많은 혁신을 추진해왔다. 그러는 동안에 정작 법원 수뇌부에서는 악습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 이상 특단의 조치 없이는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판사는 법관으로서의 명예에 일생을 바칠 수 있는 사람만 남겨야 한다. ‘엘리트 승포판’을 늘리자는 얘기다. 부를 통해 뜻을 이루려는 법조인은 법원을 떠나 당당하게 실력으로 돈을 벌면 된다. 사법부는 전관예우가 우리나라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라는 지적을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더 강한 차단책을 시행해야 한다. 당장은 인사를 비롯한 행정업무에서 판사를 놓아주어야 한다.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행위 자체가 독립성이 생명인 판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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