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美 성폭력 다룬 청소년 소설들, ‘미투 시대’ 교과서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 등을 주제로 다룬 청소년 소설이 미국 10대들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대중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이 같은 소설은 성폭력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게 적절한 ‘언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전역의 교사와 도서관 사서들은 10대 청소년이 ‘미투’를 이해하고 감정적 트라우마를 다룰 수 있도록 청소년 소설을 활용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조선일보

미국 10대들의 ‘미투 교재’로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청소년 소설 네 권. 이 같은 소설은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 등을 주제로 한다. (왼쪽부터) 로리 핼스 앤더슨의 ‘스피크’, 카미 가르시아의 ‘브로큰 뷰티풀 하트’, 에이미 리드의 ‘더 노웨어 걸스’, 이사벨 퀸테로의 ‘가비, 어 걸 인 피시즈’. /뉴욕타임스·스퀘어피쉬 출판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로리 핼스 앤더슨(56)이 1999년 출간한 장편소설 ‘스피크(Speak)’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성폭력을 주제로 다룬 청소년 소설의 시초로 꼽힌다. 고등학교에서 맞은 첫 파티에서 학교 선배에게 강간을 당한 주인공 멜린다가 그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앤더슨 작가는 처음에 문학 작품으로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출간 후 여러 학교에 책 강연을 다니면서 많은 청소년이 소설 속 주인공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스피크’는 미 전역 학교 도서관과 영어 교실에 비치됐다.

전직 교사였던 카미 가르시아(46)가 쓴 소설 ‘브로큰 뷰티풀 하트(Broken Beautiful Hearts)’도 대표적인 청소년 ‘미투 교재’다. 책은 데이트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 자신이 17살 때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폭력과 스토킹을 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어린 시절 자신과 달리, 소설 속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학대 사실을 고백한다.

지난해 출간된 에이미 리드(38)의 ‘더 노웨어 걸스(The Nowhere Girls)’는 성관계에 있어서 ‘동의’와 ‘애매한 감정’ 등에 관한 미묘한 의미를 알려준다. 리드 작가는 "침묵은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며 "싫다는 감정은 느껴지지만, 대개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내면에서 소리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묘한 성적 의사 표현 등에 관해 청소년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사들은 이 같은 소설을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교사 로레나 저먼(34)은 9학년(미국의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수업에서 2014년 발간된 이사벨 퀸테로의 소설 ‘가비, 어 걸 인 피시즈(Gabi, a Girl in Pieces)’를 교재로 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학생들에게 성폭력에 관한 강연을 할 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 신체의 모습, 성문화 등을 주제로 논의도 한다. 1200명이 모여 사는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니콜라스 시나(28) 교사가 10학년 학생을 상대로 소설 ‘스피크’를 사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뿐 아니라 도서관에서도 비슷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도서관에서는 성폭력을 다룬 청소년 소설을 따로 분류해 ‘미투 도서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의 오크 론 공공 도서관의 이자벨 그론스키(31) 사서는 미투를 테마로 한 장서목록을 웹페이지에 게시하고, 도서관 2층에도 직접 코너를 마련해 책을 비치했다. 캔자스주에 있는 존슨 카운티 도서관의 엠마 퍼나우트(22) 사서도 이와 관련해 온라인 장서 목록을 만들었다.

조선일보

일리노이주의 오크 론 공공도서관 2층에 마련된 ‘미투 도서 코너’의 모습. /뉴욕타임스


소설은 미투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을 성장시키기에 알맞은 도구란 평가가 나온다. ‘스피크’ 저자 앤더슨 작가는 소설이 청소년에게 미투라는 낯선 이슈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일종의 ‘언어’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성폭력에 관한 언어를 갖지 못한 많은 이들은 자신이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소설 읽기는 성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안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더 노웨어 걸스’를 쓴 리드 작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기보다 소설을 통해 가상 인물의 경험에 기대어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박소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