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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세계최대 큰손` 日공적연금 미즈노 히로미치 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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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제공 = GP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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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 개편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공적연금은 한 회사가 아니라 시장 전체를 봐야 한다."

미즈노 히로미치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운용에만 집착해서는 소탐대실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GPIF는 작년 말 기준으로 156조3832억엔(약 1563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2014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국민연금 자산 규모가 5월 말 기준 634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운용자산이 3배에 육박한다.

도쿄 한복판 사무실에서 만난 미즈노 CIO는 "국민 모두의 돈을 다루는 GPIF와 국민연금(NPS)은 여타 연기금과 상황이 다르다"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도 직접 운용보다는 위탁 운용에 나서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신뢰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위탁 운용 등 변화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GPIF는 대부분 자산을 외부 민간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다. 의결권 행사도 마찬가지로 민간운용사에 위탁한다. 일부 직접 운용이 있지만 채권 및 사모펀드 투자 등에 제한돼 있다. 국민연금은 전체 자산의 61.5%를 직접 운용하며 의결권도 직접 행사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GPIF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수월했나.

▷4년 전 GPIF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결정할 때 기업 쪽에서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시장 전체에서 GPIF 지분율이 8%였다. 공적연금이 갑작스럽게 '할 말을 하는 주주(행동주의펀드의 일본식 표현)'가 되는 걸 기업은 걱정했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가 공적연금을 통해 기업에 개입하려고 스튜어드십코드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있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2015년 취임한 후 스튜어드십코드에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스튜어드십코드 얘기를 하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처럼 받아들여진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도 (시장 전체의 지분을 보유한) 유니버설 오너이자 몇 세대에 걸친 '세대 간 투자'를 생각하는 초장기 투자자다. 한 회사가 좋아진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전체가 좋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기업 지배구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환경·사회문제 등과 통합해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활동을 시작했다. '스튜어드십코드=기업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기업을 옥죄는 이미지를 덜어내고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장기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우리가 돕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다(유니버설 오너란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투자자를 말한다. GPIF는 일본 내에서만 총 2321개 기업의 대주주다. 일본 전체 상장사 3636곳의 64%에 달한다).

―현재 기업들 평가는 어떤가.

▷1년에 한 번씩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GPIF의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는 의견이 74.1%에 달했다. 기업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를 파트너로 받아들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공적연금을 활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업들이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떠나 유니버설 오너인 장기투자자는 ESG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위해서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공적연금이 정부의 수족이 됐다는 염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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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운용하는 것도 기업 불안을 줄이기 위함인가.

▷위탁운용의 장단점이 있다. GPIF는 직접운용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스튜어드십코드 등에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직접투자를 하면 주주로서 책임이 생기고 기업과 직접적인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한다. 공적연금인 GPIF나 국민연금 모두 국민의 자산인데 수익률만 보고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GPIF는 지난해 명목수익률 6.9%, 실질수익률 6.5%를 기록했다. GPIF가 1.7% 수준의 실질수익률(명목수익률에서 명목 임금 상승률을 뺀 수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목표보다 4배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다).

―다른 연기금들은 수익률 위주인데.

▷국민 모두가 '내 돈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GPIF나 국민연금은 특수한 상황이다.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연금이 아니다. 노르웨이국부펀드(GPF)는 원유 매각에 따른 수익금이다. 노르웨이국부펀드는 자국 내에 투자하지 않는다. 전부 해외에 투자하기 때문에 국내 투자로 인한 문제가 없다.

―운용만 위탁한다고 신뢰가 생길까.

▷안 하면 더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GPIF도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얻는 데 2년 이상 걸렸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처음엔 패시브투자(인덱스를 통한 간접투자)만 한다고 해도 경영에 간섭한다고 게이단렌까지 나서 반대했다. 초장기 투자자란 점을 설명했다. 기업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단기 투자자다. 현재 전 세계 연기금들은 운용사가 되려고 한다. 운용사는 시장 평균이나 타 운용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 그게 아니면 존재 이유가 없다.

GPIF나 국민연금은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단기적 이익이 있더라도 사회적 안정성이 불안해진다면 결과적으로 본인들에게 돌아온다. 기업 쪽에서 이를 이해하면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가 공적연금이다. 3년 전에 이런 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과거 사례도 있고 더 어려울 것이다. 국민연금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접투자는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민연금도 운용을 위탁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직접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운용회사를 대상으로 발언력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국민연금도 위탁운용으로 돌아서면 GPIF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글로벌 운용업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경영위원회를 만든 이유는 뭔가(GPIF는 지난해 의사결정과 실행의 분리를 위해 기업 이사회에 해당하는 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 10명은 GPIF 이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외부 인사이며 이 중 피보험자 대표로 기업과 노조(렌고)에서 1명씩 참여한다).

▷공적연금은 여론의 신뢰를 받는 것이 어렵다. 공적연금의 실제 의도와 여론 사이의 '인식 차이(perception gap)'가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된다. 주요 연기금들이 반년에 한 번씩 만나는데 다들 '인식 차이'로 인한 고충을 토로한다. 특히 손실이 발생하면 비판이 커진다. 외부인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가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담보해주고 연금에 대한 비판의 방파제가 될 수 있다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 日 CIO연봉 생각보다 낮아…공익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 필요

―한국에선 위원 비전문성이 논란이다.

▷공적연금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 관리가 중요하다. 이걸 실패하면 일반 운용도 안 된다. 비전문가라도 위원들이 이해관계자들 비판을 줄여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현실적인 문제로 한국이나 일본은 운용업계가 좁아 만약 전문가로 제한하면 금융기관 출신이 다 채워버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행조직에 있으면 된다. 국민연금은 과거 사례도 있어 새로운 형태로 도전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공적연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들의 납득'이다. 한국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이 연금 운용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형태로 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한국에선 기금 고갈 염려가 커지는데.

▷역시나 연기금과 국민 사이에는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고갈이 문제라면 더 내거나, 덜 받거나, 운용 위험성을 높이거나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 머릿속에 이 방정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더 내는 것도 싫고, 받는 것을 줄이자는 데도 반대한다. 연금을 비롯해 정부와 언론이 잘 설명해야 한다. GPIF가 주식을 늘릴 때 비판이 있었지만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가입자들에게 100년 후 장기 추계 등을 통해 운용에서 GPIF가 책임지는 부분은 10% 수준이며 더 중요한 것은 출산율이나 향후 경제성장률이란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CIO를 공모 중인데 어떤 자질이 중요한가.

▷국민연금이 CIO를 공모하는데 후보가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포지션은 공모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공적연금 CIO의 자질과 관련해서는 자리를 활용해 앞으로 돈을 벌려고 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CIO나 실무진 급여가 적은 것은 감안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공적연금에 온다면 각오와 희생이 필요하다. 연봉이 조금 적은 것은 공적연금에서 일할 사람의 각오를 평가하는 일종의 리트머스라고 생각한다. 내 연봉이 3000만엔(약 3억원)인데 이걸 갖고도 많다고 말이 많았다. 유명인인 친구가 트위터에서 '능력에 비하면 너무 싼 것'이라고 반론도 했지만 여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GPIF는 CIO와 2년 단위로 계약한다. 연임 제한은 없지만 퇴직 후 2년간 관련 업계 취업 제한이 있다. GPIF 이사장이 임명한다).

―국민연금 운용본부는 정부 정책에 따라 지방으로 이전했다.

▷연금 운용본부를 비용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일본에서도 지방(가나가와현)으로 이전하기로 법률까지 2004년에 제정됐지만 설득을 거듭해 3년 전에 결국 도쿄에 남는 것으로 결정됐다. 한국과 일본은 자산운용 인력시장이 두텁지 않은 데다 지방에 금융 관련 인프라스트럭처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 도쿄 등 핵심부에 있지 않으면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 공적연금은 연봉 수준이 높지 않은 데다 비판을 받기 쉬운 자리인데 일까지 지방으로 가서 하라고 하면 누가 오겠나(GPIF는 현재 도쿄 랜드마크 중 한 곳인 '도라노몬힐스 모리타워'에 입주해 있다).

▶ 미즈노 히로미치 CIO는…

△1965년 출생 △오사카시립대 법학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켈로그스쿨) △스미토모신탁 국제신용부 △스미토모미쓰이신탁은행 일본기업금융 대표 △콜러캐피털 아시아 투자부문 대표 △일본공적연금(GPIF) 고문 △2015년~현재 GPIF CIO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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