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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현직 변호사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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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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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3] 비록 여건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 하는 일 자체에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도 하지만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라이선스가 있어야만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아무나 변호사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변호사 자격증 없이 변호사 업무를 했다가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범법자 낙인이 찍히게 된다.

변호사 자격증 얻는 게 또 쉬운 일인가? 4년간 학부를 마치고 다시 로스쿨에서 3년간 전문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변호사 시험이라는 난관을 통과해야 비로소 변호사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법적으로나 사실상으로도 만만치 않은 진입장벽이다.

하는 일은 또 어떤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한다. 공무원이 아님에도 공무원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공공성을 특징으로 한다.

사회적 지위도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고 변호사 수입 역시 대폭적으로 낮아진 게 사실이지만 사회적 신뢰를 먹고사는 직업이고 눈이 침침해지기 전 기력이 있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변호사라는 직업이 행복한 직업일까?

소송에는 승패라는 결과가 나온다. 다른 일들은 설령 원하는 결과가 100% 나오지는 않더라도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는 나온다. 그러나 소송의 결과는 'All or Nothing'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아무리 수년간 전력을 다 기울이더라도 재판부 심증을 50% 이상 얻지 못할 때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항소심에서 뒤집을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사건은 이미 내 손을 떠나 다른 변호사에게 가게 마련이다.

판사는 판결로, 검사는 공소장과 불기소장으로 말하듯 변호사는 서면으로 말한다. 의뢰인이 갖다 주는 서류와 상대방이 제출하는 서류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상대방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의뢰인과 관계인들에게 재삼, 재사 우리가 구성한 스토리가 탄탄한지 확인해야 하고 자칫 소송 도중에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깟 서면 쓰는 게 뭐 대단하냐고? 변호사가 쓰는 서면에는 그럴싸한 우리 스토리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게 던지는 함정도 있고, 상대방의 반박에 대비해 미리 깔아놓는 복선도 있다. 그렇다고 변호사가 사무실에 앉아 자판만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 선임한 사건의 의뢰인과 전화 연락, 재판 참석, 관련 미팅과 외부 회의로 평일 낮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에 응대하다 보면, 재판에 참석하다 보면 낮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신건 수임을 위한 활동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회활동을 소홀히 하다보면 몇 달 지나지 않아 내 계좌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평일에는 도대체 재판에 대비한 서면 작성에 집중할 시간을 배정할 수가 없다. 야근은 당연하고 주말 이틀 중에 하루는 출근해야 재판 준비에 차질이 없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술 한잔 했다가는 감당이 안 되는 압력이다.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절박하고 자영업자들은 폐업과 창업을 반복한다고 한다. 죄송스럽기 그지없는 푸념을 하고 말았다. 저녁 먹고 들어와 야근을 준비하며 나는 묻는다. 일에 짓눌리고 사람들에게 치이면서도 아직 이런 믿음 놓치지 않고 있냐고. '때때로 법이 정의를 실현해 줄 때가 있고, 변호사는 그것을 직업적 사명으로 한다'는 믿음 말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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