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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IF] "믿었던 대체 농약 너마저"… 꿀벌 절반이나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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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꿀벌이 최근 갑자기 개체 수가 급감하자 세계 각국은 살충제 사용을 막거나 꿀벌에 덜 해로운 농약을 개발하며 꿀벌 감소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4월 꿀벌 집단의 붕괴를 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네오니코티노이드를 대신한 살충제 역시 꿀벌에게 피해를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꿀벌의 수난사는 언제쯤 끝날까.

대체 농약도 꿀벌에 악영향

영국 로열홀러웨이런던대 연구진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살충제 '설폭사플로르'에 오래 노출된 꿀벌 군집에서 개체 수가 절반가량으로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애벌레도 그만큼 줄었다. 해리 시바이터 연구원은 "대체 살충제도 꿀벌에게 해롭다는 것이 처음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살충제는 현재 중국·캐나다·호주 등 다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연구진은 학교 캠퍼스 경계를 따라 일정 간격으로 벌통 52개를 설치했다. 이 중 절반에 주기적으로 설폭사플로르를 조금씩 살포했다. 15주 이후 관찰한 결과 살충제가 뿌려진 벌통에서는 꿀벌과 애벌레의 수가 살충제가 뿌려지지 않은 벌통과 비교해 54%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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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니코티노이드는 지난해 유럽에서 실시한 대규모 야외 실험을 통해 꿀벌을 떼죽음으로 내몬 주범으로 드러났다. 최근 이 살충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꿀벌에게 해를 끼치는지 밝혀졌다. 영국 스털링대 연구진은 지난달 "꿀벌이 꽃가루를 모을 때 초당 400번 날개를 진동하는데 네오니코티노이드에 주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진동 횟수가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꿀벌에 비해 모은 꽃가루가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살충제가 꿀벌 몸속을 파고들어 신경계의 신호 전달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날개 운동이 느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RNA 간섭 이용한 유전자 살충제

꿀벌은 '인류 존망의 풍향계'라 불린다. 당장 꿀벌이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지면 식물의 꽃가루받이가 불가능해져 사과·양파·감자 등 100대 농산물 생산량이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는다. 이 때문에 꽃가루받이로 꿀벌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50조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꿀벌을 지킬 방법은 없는 것일까. 최근 꿀벌은 건드리지 않고 천적인 진드기만 골라 방제하는 유전자 살충제가 개발돼 희망을 주고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앨라이람은 지난 2012년 최대 농업 기업인 몬샌토와 10년 개발 협약을 맺고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한 진드기 살충제를 공동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RNA 간섭은 유전 물질인 RNA의 짧은 가닥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가 몸에서 작동하는 것을 막는 현상을 말한다.

앨라이람은 꿀벌을 먹이로 삼는 응애(진드기 일종)의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RNA 가닥을 개발했다. 사람 세포에 RNA 조각을 넣는 일은 까다롭지만, 응애는 구조가 단순해 RNA 가닥이 장(腸)에서 쉽게 흡수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농약을 뿌리듯 RNA 가닥이 든 물을 뿌리면 식물로 흡수되고, 결국 수액을 빨아 먹은 응애가 RNA 간섭으로 죽는 원리다. RNA 간섭 살충제는 응애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꿀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또 응애가 내성을 획득하더라도 변이된 유전자에 맞춰 RNA 가닥을 새로 만들면 된다. 이 농약은 오는 2020년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꿀벌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북미 지역처럼 하루아침에 벌들이 모두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까지는 보고된 적은 없지만 각종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법정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과 '부저병'이 대표적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2011년 처음 국내에서 발생했다. 이 병에 걸리면 유충이 말라 죽는다. 이 병으로 매년 3000~4000여 개의 벌집이 폐사하고 있다. 꿀벌의 유충을 썩게 만드는 세균성 질병인 부저병의 피해도 매년 커지고 있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꿀벌은 농작물뿐 아니라 야생 멸종 위기 식물의 꽃가루받이에도 기여한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몇 종에 대해 국내 농업과 양봉환경에 비추어 체계적인 위해성 평가가 이뤄지고 친환경 농약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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