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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슬림도 형제자매로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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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초교파 수행공동체 ‘테제’의 알로이스 원장 수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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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15일이었고, 하필 서울시청 근처였다. 프랑스에서 온 테제 공동체의 알로이스 원장 수사(64)를 만나기로 한 날짜와 장소는 참 공교로웠다. 알로이스 원장 수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커피숍 밖에서는 광복절 관련 집회가 한창이었다. 이 중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개신교계가 국무회의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통과를 비판하며 연 ‘미스바대각성 구국금식기도성회’도 있었다. 집회의 성격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모인 사람 중에서 청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불교는 또 어떤가. 서울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총본산 조계사가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의 거취를 두고 몇 달째 혼란에 빠져 있었다. 종교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매년 전 세계 청년 10만명 방문

특별한 프로그램 없어도 인기

70여명 수사의 ‘경청’이 비결

“용서를 통한 ‘평화’ 궁극적 목적”


한국의 종교들은 ‘탈종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두 위기다. 기존 신도들은 점점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종교를 멀리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 있는 ‘초교파적 수행공동체’ 테제는 다르다. 매년 전 세계에서 10만명의 젊은이가 방문한다. 한국에서도 500명가량이 찾아온다고 한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3차례 공동기도를 제외하고는 상주하는 수사들이 젊은이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전부다.

알로이스 원장 수사는 15일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일치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3일 한국을 찾았다. 이번이 4번째 한국 방문이다. 창설자인 로제 수사가 세상을 떠난 2005년 2대 원장 수사를 맡았다.

먼저 테제의 ‘인기 비결’부터 물었다. 알로이스 수사는 “청년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테제에서는 매일 저녁기도를 마친 뒤 상주하는 70여명의 수사들이 어느 곳에서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한다. 알로이스 수사는 “많은 젊은이들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며 “단지 젊은이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 뿐인데,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테제가 갖고 있는 ‘공동체’란 상징성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아주 가난하기도 하고,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 생활이지만, 청년들이 이를 보고 힘을 얻는 것 같다”며 “우리 수사들은 30개국에서 온 여러 교파와 교회 출신들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난민, 앞으로 가장 큰 문제 될 것

예수님, 모든 인간 위해 계신 분”


테제는 일찌감치 난민에게도 문을 열었다. 난민 중 가장 많은 수를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다. 알로이스 수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슬림이라도) 상대방을 형제와 자매로 맞이해야 한다”며 “예수님은 신앙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위해 계신 분”이라고 말했다. 또 “무슬림을 향한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두려움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며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접촉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1974년부터 테제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공동소유하고 나누는 형제들의 공동체가 세계의 청년들을 모으는 것을 테제에서 보았다”며 “교회는 물론 민족과 나라의 장벽도 넘어서는 모습이 나를 매혹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사실을 테제에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테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알로이스 수사는 간단하게 ‘평화’라고 답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되어 사람들 속으로 가는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여러 나라 청년들이 만나서 함께 지내는 것이 평화의 작은 씨앗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알로이스 수사는 “평화는 언제나 투쟁으로 얻을 수 있다”며 “우리는 용서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하고, 그다음에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또 “앞으로 가장 큰 문제는 난민 문제가 될 것”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거센 비판을 받는 한국의 종교가 테제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알로이스 수사는 “종교의 역할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의 삶은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라며 “네가 뭔가를 이뤘고 잘나서가 아니라 네가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테제는 창설 때부터 수사들이 기부나 헌금을 받지 않고 노동으로 살아간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돈이 없으면)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지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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