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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Her 스토리] ‘미투 운동 촉발’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 ‘미성년자 성폭행범’ 가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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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급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66)의 성폭행을 고발하면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이탈리아 여배우 겸 영화감독 아시아 아르젠토(43)가 미성년자를 성폭행해 배상금까지 지급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1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2013년 봄 캘리포니아주(州) 한 호텔에서 당시 37세였던 아르젠토가 미국 영화배우이자 록 가수 지미 베넷(22)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당시 베넷의 나이는 17세였다. 캘리포니아주의 합법적인 성관계 동의 연령은 18세다. 아르젠토는 베넷의 입을 막고자 38만달러(약 4억2400만원)까지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젠토 측은 "입막음 목적은 아니다"며 "동의 하에 가진 관계"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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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이 일어났던 2013년 5월 9일 캘리포니아주(州) 마리나 델 레이 리츠칼튼 호텔에서 아시아 아르젠토(오른쪽)와 지미 베넷이 같이 있는 모습. /아시아 아르젠토 인스타그램


이는 아르젠토가 20년 전에 있었던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한 후 한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베넷은 아르젠토가 성폭력 피해자로 여겨지는 걸 힘들어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을 촉발한 배우의 ‘두 얼굴’에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르젠토의 소셜미디어(SNS)에는 "강간범"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 ‘호러퀸’으로 이름 날린 배우

아르젠토는 1975년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호러 마스터’라고 불리는 영화감독인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와 배우인 어머니 다리아 니꼴로디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젠토는 9살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다.

어릴 적 아르젠토는 외롭고 우울한 아이였다.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는 어린 아르젠토에게 침대 맡에서 자신이 쓴 호러 영화 각본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젠토는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자주 집을 비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했다.

아르젠토는 일찍이 아버지 영화에 출연하며 이탈리아 ‘호러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배우가 된 이유도 아버지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였다. "야망이 있어 배우가 된 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날 알아봤으면 해서 배우가 됐습니다. 아버지는 내 감독으로 있을 때만 정말 아버지가 돼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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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르젠토. /아시아 아르젠토 인스타그램


그는 18살이 되던 해 아버지 영화인 ‘트라우마(헤드 헌터)’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이후에도 아버지 영화인 ‘스탕달 신드롬’, ‘오페라의 유령’, ‘눈물의 마녀’, ‘드라큘라 3D’에 차례로 주연으로 발탁됐다. 호러 영화 특성상, 아르젠토는 아버지 영화에서 학대당하는 역을 주로 맡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딸을 학대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아르젠토는 2002년 할리우드 영화 ‘트리플 엑스’에서 주연을 맡아 전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인상 깊은 조연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아르젠토는 2008년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영화 시상식인 ‘도나텔로(David di Donatello)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는 등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연출로도 영역을 확장해, 영화 ‘아리아’를 비롯한 영화 4편을 연출했다.

◇ ‘미투 운동 기폭제’에서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베넷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일자, 아르젠토 뒤에 붙은 수식어는 ‘유명 배우’와 ‘미투 운동 기폭제’에서 ‘성폭력범’으로 바뀌었다. NYT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베넷은 지난해 11월 아르젠토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과 임금 피해, 성폭행을 당했다"며 350만달러(약 39억1300만원)를 손해배상금으로 청구했다. 아르젠토 측은 베넷에게 38만달러를 건네며 "베넷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NYT는 "입막음용이었다"고 전했다. 이 돈은 올해 4월에 모두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젠토는 자신이 연출을 맡은 2004년 영화 ‘이유있는 반항’에서 모자지간으로 당시 7살이었던 베넷과 함께 출연했다. 슬하에 두 자녀가 있고 이혼한 상태였던 아르젠토는 베넷에게 때로는 멘토, 때로는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도 둘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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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유있는 반항’의 한 장면. 지미 베넷(왼쪽)은 2013년 5월 9일 캘리포니아주(州) 마리나 델 레이 리츠칼튼 호텔에서 아시아 아르젠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이유있는 반항’


성폭행은 2013년 5월 9일에 캘리포니아주(州) 마리나 델 레이 리츠칼튼 호텔에서 발생했다. NYT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이날 아르젠토는 베넷에게 술을 먹이고 구강성교를 비롯한 성행위를 했다. 베넷이 만 17세 생일을 갓 두 달 넘겼을 때다. 캘리포니아주의 합법적인 성관계 동의 연령은 18세라 이 경우 미성년자 성폭행이 인정된다. 베넷은 당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치스럽고 역겹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베넷은 아르젠토가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자,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가 피해자로 비춰지는 걸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아르젠토는 성폭행 논란과 관련 "베넷과 나는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베넷은 아르젠토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갔다고 NYT는 전했다. 성폭행을 당한 날, 베넷은 아르젠토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 달 뒤인 2013년 6월 8일에는 베넷은 아르젠토에게 "보고 싶어요, 엄마!!!!(Miss you momma!!!!)"라는 트위터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에는 같이 찍었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아르젠토가 베넷에게 준 팔찌 사진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 한때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고발했던 아르젠토

아르젠토는 이번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 할리우드에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쯤 피해를 당했지만 와인스타인이 나를 짓밟아 버릴까 두려워 폭로하지 못했다"면서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아르젠토는 21살이었을 때 강제로 와인스타인에게 구강성교를 당했으며 그 이후로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와인스타인은 영화 ‘킬빌’, ‘펄프 픽션’, ‘와호장룡’,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 많은 화제작을 제작·배급해온 할리우드 최고 권력자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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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와인스타인. 아시아 아르젠토를 비롯해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은 2017년 10월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조선DB


아르젠토와 함께 다른 여배우 2명이 뉴요커에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고발했으며, 안젤리나 졸리·기네스 펠트로 등 세계적인 여배우도 NYT 등에 와인스타인을 폭로했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을 고백하자 사회 각지에서는 미투 운동이 봇물을 이뤘다.

10년 전 미투 운동을 만든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이번에 불거진 아르젠토와 베넷 사건과 관련해 20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사람들은 (아르젠토의) 최근의 뉴스를 미투 운동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이용할 것"이라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면 안 된다. 이건 지켜보는 스포츠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운동이다"라고 올렸다. 아르젠토의 사건으로 미투 운동 자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다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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