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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라이프 트렌드] 부서·직급 타파, 업무·의견 공유…잠자던 보험 고객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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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생명 ‘애자일’ 조직
중앙일보

ING생명 애자일 조직 구성원이 당일 업무 계획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ING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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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기획자 김모씨는 20~30대 가입자를 위한 특화 상품을, IT 담당자 최모씨는 젊은 고객에 맞는 모바일 상품 서비스를 개발한다. 팀은 2주마다 목표를 점검하고 작업 목록을 작성해 일을 나눈다. 팀원은 직급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언뜻 스타트업 회사 분위기 같지만 사실 굴지의 보험사 ING생명의 이야기다.

신기술을 보유한 IT기업이 금융산업에 뛰어들면서 전통적인 금융산업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의 대명사로 통한 금융기업은 저마다 전례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저금리·저성장으로 대변되는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누가 더 빠르게’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ING생명이 국내 보험회사로는 최초로 전사적으로 ‘애자일(Agile)’ 조직을 도입하는 혁신을 단행해 주목을 받는다. 애자일이란 날렵하거나 민첩하다는 뜻의 영단어다.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각기 다른 직무를 가진 구성원이 업무 중심으로 모여 빠르고 유연하게 한 팀이 되는 유기적 단체를 일컫는다. ING생명이 애자일 조직을 도입한 건 기존 상명하복 방식의 기업 문화로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혁신, 주 52시간제 시행 등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NG생명은 지난 4월 조직을 개편해 본사 직원 50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을 애자일 조직 소그룹에 배치했다.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고객의 행동 흐름에 따라 ▶새로운 고객 유치 ▶기존 고객의 만족도 제고 ▶고액자산가 확보를 목표로 삼은 세 가지 대조직을 신설했다. 그 아래에는 마케팅·영업·운영 성격이 한데 모인 멀티 기능의 소그룹(스쿼드) 18개를 꾸려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했다. 임원→부서장→중간 관리자→직원으로 이어진 수직적 직급체계는 철폐했다. 모든 업무를 상하(上下)관계가 없는 수평적 팀으로 바꿨다. 경영진은 전략 목표나 방향성만 제시한다. 과제를 어떻게 실행할지는 팀원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기능’ 중심으로 나뉘던 기존 조직이 ‘업무 과제’ 중심으로 새롭게 모이자 한 팀 내에서 집단 지성을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실행 도중 실패하더라도 다른 대안으로 발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 굴지의 보험회사 직원이 마치 스타트업 직원처럼 일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팀원 간 토론도 활발하다.

계약유지율 상승, 휴면고객 감소
신상품 준비 기간도 짧아졌다. 과거에는 한 부서가 신상품을 개발하면 그 결과물을 다른 부서가 차례대로 넘겨받아 점검했다.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초기 단계로 돌아가 상품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하면 업무 처리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때를 놓친 상품을 출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애자일 조직을 도입한 이후 신상품 준비 기간이 과거 2개월에서 현재는 3~4주로 줄었다. 상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언더라이팅, 보험금 심사 등 유관 부서가 함께 참여해 실시간 피드백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기존엔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도 새 조직이 도입된 이후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ING생명은 그간 FC(보험설계사)채널 계약유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담팀까지 꾸렸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애자일 조직으로 개편했더니 영업·운영·고객전략 등 부서 간 업무 융합으로 새로운 개선책을 도출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시범 운영했더니 FC채널의 4회차 계약유지율이 직전 3개월보다 평균 2%포인트 향상됐다. 이 성과를 토대로 ING생명은 전 지점에 유지율 개선책을 도입할 예정이다.

직원의 사고도 보다 유연해지면서 휴면고객이 줄었다. 그간 업계에서 휴면고객은 더 이상 상품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주요 판촉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ING생명은 애자일 조직 도입 이후 이러한 선입견에서 탈피해 일부 휴면고객에게 접촉했다. 그랬더니 그들 중 3%에서 새로운 계약이 창출됐다.

ING생명 직원은 애자일 조직을 도입한 지 약 4개월 만에 다양한 업무 분야에서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의 가치를 몸소 경험하고 있다. 특히 애자일 조직의 강점 중 ‘권한 위임’ 제도가 이 같은 성과를 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개개인이 최대한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 일하는 방식이 능동적으로 바뀐 것이다.

ING생명은 지난해부터 애자일 조직으로 개편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단계를 거쳤다. 우선 애자일 조직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ING은행·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 6개사에 벤치마킹 트립을 다녀왔다. 또 임직원과의 미팅·워크숍 등을 통해 오랜 시간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 2월부터는 두 달간 애자일 소그룹에 대한 테스트 운영을 시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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