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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대학 이사회는 지원 기관…군림하려 해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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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황상익 성신학원 이사장

심화진 총장 10년 집권하며

학내 분규로 몸살 앓던 성신여대

임시 이사진 학내 구성원 의견 수렴

올 5월 총장 직선제로 빠른 정상화

재학생 50% 넘는 높은 투표율

“성신여대 민주화 과정서 받은

사회 도움 되갚으며 역할할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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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학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재단의 전횡이다. 교육은 공공재라고 하지만 학교를 사유물로 취급하는 재단이 흔했다. 이 때문에 학내 분규가 발생하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도 제대로 정상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학내 갈등이 있었고 지난해 6월에는 10년간 재직했던 심화진 총장이 총장 선임 무효판결로 물러나는 진통을 겪은 성신여대는 빠르게 정상화 되고 있다. 지난 5월말 교수·직원·학생·동문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양보경 교수(지리학과)를 신임 총장으로 선출했다. 교육부가 최근 진행한 ‘대학총장 선출 실태 전수조사’ 자료를 보면 전국 4년제 사립대학 가운데 학교구성원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를 도입한 곳은 4%에 불과하다.

빠른 정상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함께하는 교육>이 황상익 성신학원 이사장을 8월13일 만났다. 황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임시 이사로 파견됐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 뒤 학내 구성원들의 바람을 최대한 청취했다. 구성원들이 가장 원한 건 총장 직선제였다”며 “재학생들의 투표 참여율이 50%가 넘었다. 그만큼 학교 발전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이 컸다”고 설명했다. 황 이사장은 “이사회는 대학을 지배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뒤에서 ‘서포트’하고 혹시 잘못이 있는지 감독하는 정도면 된다”며 “국가권력이 대학을 지배하면 안 되듯이, 대학 이사회가 대학을 지배하려는 건 대학을 망치는 것”이라고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황 이사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지난 5월 성신여대가 20년 만에 직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과거와 달리 총장 선거에 교수, 직원은 물론 학생과 동문들까지 참여했다. 어떻게 총장 직선제를 하게 됐나?

“성신여대에 지난 2015년 3월 임시 이사가 파견됐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과 마찰이 심했다. 결국 지난해 9월 나를 비롯한 8명의 이사들로 새 이사회가 구성됐다. 내가 이사장이 된 뒤 학내 구성원들의 말을 들어본 결과, ‘우리 손으로 직접 총장을 선출해야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지난 10여년간 성신이 여러 고통을 겪었는데 핵심 원인이 총장을 구성원들의 손으로 뽑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총장 직선제 과정에서 이사회가 상당한 결단과 협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호성 총장을 이사회에서 임명했다. 김 총장 임기는 4년이었지만 총장 직선제를 마련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기로 본인이 다짐했다. 올 2월 총장 선출 방식 논의를 시작했다. 교수회에서 초안을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학생·동문들과 협의했다. 동문이 포함된 건 지난 몇 년 간 ‘성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동문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직선제로 총장 후보를 뽑아도 임명 권한은 이사회에 있다. 이사회는 교수·직원·학생·동문이 협의한 직선제 결과에 대해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 투표일 단 하루였지만 재학생들 열띤 참여

-투표 반영 비율이 교수 76%, 직원 10%, 학생 9%, 동문 5% 등으로 다른데 논란은 없었나?

“처음에는 의견 차이가 컸지만 3~4차례 만나면서 점점 좁혔고 최종 반영비율의 미세한 조정은 이사회 결정으로 넘겼다. 지난 4월 3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아무런 잡음 없이 선거를 마쳤다.”

-총장 직선 관련 특히 의미를 두고 싶은 일은?

“교수나 직원 투표율이 높을 건 당연했다. 한데 문제는 학생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가였다. 더구나 올해는 총학생회도 구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데 학생들의 투표율이 54.1%였다. 재학생이 총장 선거에 참여하는 다른 대학의 경우 학생 투표율이 10% 안팎인 걸로 안다.”

-학생들의 참여 열기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총장 선거는 5월30일 단 하루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했다. 내가 투표일 점심 때 학생 투표율이 얼마나 될까 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사진을 찍어 보냈다. 투표장인 체육관이 꽉 찼다. 우리 대학의 재학생 투표율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난 몇 년간 파행 과정에서 재학생들이 학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임시 이사는 임기만 채워도 된다. 속된 말로 황 이사장은 ‘사서 고생한 셈’인데….

“임시 이사로 파견됐지만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건 당연하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총장 직선제를 하는 일부 대학에서 정치판 뺨치는 과열 분위기가 있었고 이를 빌미로 과거 정권이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유도하기도 한다.

“민주적 선거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선거 과열을 막는다고 간선제를 채택한 대학에서 되레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 지성 기관인)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는가?”

-성신학원 82주년 기념행사에서 “성신은 한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성신 구성원,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공동자산”이라고 밝혔다.

“성신학원이 사립이지만 교육은 공공자산이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성신여학교는 1936년, 성신여대는 1965년 설립.) 교육기관은 정부·사회의 지원을 받고 대학에서 다루는 학문이나 지식은 몇몇 교수나 학생의 독점물이 아니다. 인류 공동자산이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진통을 겪는 동안 성신은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우리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를 갚기 위해서 성신은 큰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내 얘기보다는 남의 얘기 듣는 게 중요”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2004~2006), 전국교수노동조합 1·2대 위원장(2001~2005)을 역임했다. 이 경험이 이사회를 운영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나?

“지난 2000~2001년 총리실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소위위원장을 했다. 당시 과학기술계에서 10명, 윤리?철학 및 시민단체 10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처음에는 위원들간 입장이 꽤나 달랐다. 그러나 열심히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니 합의가 가능했고 ‘생명윤리 기본법’의 틀을 마련했다. 노력하고 상대방 입장을 존중하면 이견을 좁히는 게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이사장을 하면서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념이 있는지?

“내 얘기보다는 남의 얘기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사장으로 임명된 뒤 첫 번째 한 일이 구성원들에게 ‘여러분들의 충실한 귀가 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이사회가 지배하려고 들지 말고 뒤에서 ‘서포트’하고 혹시 잘못이 있는지 감독하는 정도면 된다. 국가권력이 대학을 지배하면 안 되듯이, 대학 이사회가 대학을 지배하려는 것은 대학을 망치는 것이다.”

-전임 심화진 총장이 10년 정도 재임하면서 많은 분란이 있었고 그에 얽힌 사람들도 여전히 대학에 남아 있을 텐데….

“분란이라기보다는 여러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이 일부 있고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징계는 과거 비리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거다. 과거 비리에 대해서 책임을 제대로 물으면 앞으로 비리가 생길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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