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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8년만에 구제금융 졸업하지만 실업난 젊은층 '그리스 탈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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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 피하고 유로존 붕괴 막았지만

월급·연금 3분의 1 줄고 세금 올라 생활고

일자리 없어 국민 4%가 해외로 떠나

'잃어버린 세대' 젊은층 실업률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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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폐쇄된 상가 건물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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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20일(현지시간) 8년 만에 구제금융 체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교육을 잘 받은 젊은 층이 해외로 떠나는 ‘그리스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은 “구제 금융은 끝나지만 악몽은 계속된다"고 보도했다.

방만한 재정 지출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던 그리스는 2010년 4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다. 3차례에 걸쳐 국제채권단으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2890억 유로(약 370조원)를 조달해 나라 살림을 꾸려왔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혹독했다. 파산 위기를 넘기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 개혁과 함께 세금 인상, 재정 지출 대폭 삭감 등 긴축 정책을 이행해야 했다. 그리스 국민의 월 소득과 연금 수령액이 평균 3분의 1가량 줄었다. 투자와 소비가 쪼그라들면서 국가 경제 규모는 25%가량 작아졌다.

런던경제대 케빈 페더스턴 교수는 “긴축 기간을 견디며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를 피했을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조건을 버텨낸 그리스가 유로존을 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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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기간을 거치면서 그리스 경제규모는 25%가량 축소됐다. 상가가 문을 닫고 임대한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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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스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분의 3이 국가가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다고 답했다. 구제금융이 그리스를 구하기보다 국가에 해를 끼쳤다고 생각했다.

연금 생활자인 요르고스 바겔라코스는 “매일 아침 어떻게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눈을 뜬다. 구제금융 체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구제금융 이전에 1250 유로(약 160만원)의 연금을 받았으나, 10여 차례 연금이 깍이면서 지금은 685 유로(약 87만원)로 아내와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생필품 구매를 위해 빚을 지고 두 아들 가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과의 합의에 따라 내년 연금 추가 삭감, 내후년 세금 추가 인상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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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쳐다보고 있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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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그리스는 이민으로 40만명이 넘는 약 4%의 국민을 잃었다. 젊은 층이 해외로 탈출하면서 그리스 국민 평균 연령은 2008년 이후 4년 이상 높아졌다. 20~39세 인구가 전체의 29%를 차지했었지만 24%로 떨어졌다.

그리스 탈출이 이어지는 이유는 일자리가 부족해서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013년 27.5%에 달했고 특히 25세 이하 실업률은 58%나 됐다.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젊은 층 10명 중 4명이 실업 상태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카페서 일하는 한 그리스 20대 여성은 “나와 내 친구들은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을 그만뒀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봐야 이뤄지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온라인 판매회사에서 일자리를 잡았지만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아 6개월도 안 돼 실직했다. 이후 포장 회사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젊은이들은 EU나 다른 나라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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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벼룩 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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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80% 규모에 달하는 그리스의 국가부채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는 채권 시장에서 국가 운영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지만, 터키발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가 향후 수년간 급격한 경제 성장을 끌어내지 못하면 한계에 처한 가계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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