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문 대통령 “평화의 고단한 길 걸었던 친구 잃었다” 코피 아난 애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노벨평화상 수상한 첫 흑인 ‘유엔 사무총장’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각별한 인연 맺어

후임 반 총장 “세계평화·인권에 평생 헌신”

전세계 지도자들 추모 성명…트럼프는 침묵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8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엔 직원 출신으로 처음으로 이 기구의 수장에 올랐으며, 최초의 흑인 유엔 사무총장이기도 한 그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코피 아난 재단’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가족과 재단은 매우 슬프게도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린다”며 “그는 고통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다가가 깊은 연민으로 많은 사람을 어루만졌다”고 밝혔다. 아난 전 총장은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 평직원으로 시작해 사무총장까지 오르며 이 기구에 40여년을 몸담았다. 1938년 4월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부족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아난 전 총장은 가나 과학기술대에 다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발을 들인 뒤, 나이로비, 제네바, 카이로, 뉴욕 등의 유엔 기구에서 일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유엔평화유지군(PKO) 책임자로 일했다. 1994년 80만명이 숨진 르완다 대학살이나 1995년 약 8000명의 보스니아 무슬림 주민 학살 사건 등이 이 기간에 일어났다. 그는 1997년 1월 직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7대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해, 유엔 개혁, 에이즈 확산 방지, 빈곤퇴치, 지역 분쟁 중재 등에 힘을 쏟았다. 2002년 재선에 성공해 모두 10년 간 유엔을 이끈 뒤 2006년 말 퇴임했다. 그는 1998년에는 무기 사찰 문제를 놓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과 직접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일로 이라크와 서방의 긴장을 완화하긴 했지만, 독재자 후세인과 악수하고 시가를 피운 것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재임시절인 2001년 유엔을 되살리고 인권 문제를 주도한 공로로 유엔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코피 아난 재단은 “아난은 일생을 더 공정하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운 세계적 지도자이자 깊이 헌신하는 국제주의자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그의 아들 코조 아난이 아버지의 지위를 이용해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 관련해 스위스의 한 업체로부터 급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에서 퇴임한 뒤에는 2007년 창립된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 ‘엘더스’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 이 단체의 회장에 올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1998년 제4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아난 사무총장 시절인 2001년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을 지냈고, 아난의 뒤를 이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올라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 전 총장은 1965년 결혼한 나이지리아 출신 티티 알라키아와 이혼하고, 1984년 스웨덴 변호사인 네인 래거그렌과 재혼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세 자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추모글을 통해 “우리는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친구를 잃었다. 분쟁이 있는 곳에 코피 아난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며 애도했다. 또 “뵙지 못하고 이별하게 된 것이 너무 아쉽다. 오직 평화를 추구하는 게 코피 아난을 추억하는 방법일 것”이라며 “아프리카의 푸른 초원과 뜨거운 열정 곁에서 깊이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앞서 한국 정부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국민과 함께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5년 동안 아난 전 총장과 나는 전세계 모든 사람의 평화와 발전, 인권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왔다”며 “그는 유엔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유엔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일들에 누구보다 활발히 매진했다”고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전세계 지도자들도 잇따라 깊은 애도를 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깊은 슬픔으로 접했다”며“아난 전 총장은 여러 면에서 유엔 그 자체였다. 그는 평직원에서부터 시작해 독보적인 위엄과 결단력으로 유엔을 새천년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처의 사람들에게 대화와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을 제공했다”며 “그는 이 격동과 시련의 시기에, 유엔 헌장의 가치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의 유산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영감으로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위터에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유엔의 개혁가인 그는 이 세상을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다. 그가 태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의 헌신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차분하고 단호한 접근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구테흐스 총장에게 보낸 조전에서 “고인의 유족과 유엔 사무국 직원들, 가나 정부에 진정한 위로와 지원의 말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성명에서 “글로벌 문제에 있어 공동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성명을 내어 “아난 전 총장의 사망 소식에 슬프다. 아난 전 총장의 가족과 그의 모국 가나 사람들에게 위로를 표한다”며 “아난 전 총장은 유엔에서의 긴 재직 기간 동안 평화와 인간 존엄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기렸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현지시각 이날 밤 10시까지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