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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고래잡이에 빨갛게 변한 바다…‘수 세기 이은 전통’ 혹은 ‘대규모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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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덴마크령 페로 제도 산다바구 해변이 사냥당한 고래의 피로 빨갛게 변해버린 모습이 공개됐다. 페로 제도의 고래잡이 문화는 매년 논란이 되는데, 올해도 ‘수 세기 동안 이어온 전통’과 ‘대규모 동물 학살’이란 두 의견 사이의 논쟁이 불거졌다.

영국 BBC 등은 16일(현지 시각) 페로 제도에서 180여마리의 거두고래가 포획돼 바닷물이 핏빛으로 물든 모습을 공개했다. 영국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사이에 있는 페로 제도에서는 매년 주민이 모여 합법적으로 거두고래를 사냥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올해 고래잡이는 지난달 30일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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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제도 주민이 2018년 7월 30일 산다바구 해변에서 거두고래를 사냥하고 있는 모습.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 알라스테어 워드(22)가 자신의 졸업을 자축하고자 페로 제도에 놀러 갔다가 이 광경을 촬영했다. /알라스테어 워드


사진이 공개되자 각종 환경·동물보호단체는 분노했다. 영국 해양환경단체 ‘블루 플래닛 협회(the Blue Planet Society)’는 트위터 게시글을 통해 페로 제도의 포획 행위를 비난하며 ‘원시 국가’ ‘21세기에 편입될 필요가 있는 나라’로 표현했다. 세계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을 윤리적으로 다루는 사람들(PETA)’도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물은 우리처럼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페로 정부는 주민 삶의 양식 일부일 뿐이라며 즉시 반박에 나섰다. 17일 페로 정부가 CNN에 전한 성명에서 "고래 고기와 지방은 페로 제도의 오랜 국가 식량이었다"며 "고래 사냥 참가자와 지역 주민은 잡힌 고래 고기를 화폐 교환 없이 두루두루 나눠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곳 주민은 기본 가정식으로도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다.

페로 정부는 동물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잔인한 행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냥법을 규제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페로 법령은 고래가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사냥할 것과 자격증을 지닌 사람만이 고래를 포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페로 제도의 고래잡이 공식 사이트에도 뾰족한 작살이나 칼을 사용해 해안까지 고래를 끌고 오던 전통적 방식이 아닌 고래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둥근 모양의 갈고리를 분수공에 꽂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페로 제도의 고래 사냥은 현행법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제적 상업 포경 금지령은 1980년대부터 시행됐지만, 이곳에서 잡힌 고래 고기는 판매용이 아닌 지역 사회 내에서 식량으로 나누는 것이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의 고래잡이 금지 규정 역시 페로 제도에 적용되지 않는다. 페로 제도가 EU에 속한 덴마크의 자치령이긴 하지만, 외교권 등 대부분 권리를 자체 행사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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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고래 사냥이 페루 제도에서 오랜 전통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 페로 제도 내 고래잡이 관련 공식 기록은 약 450년 전인 1584년부터 작성돼오고 있다. /페로 제도 고래잡이 공식 웹사이트


고래잡이는 페로 제도 내 오랜 전통이지만 외부인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현장 사진을 찍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 알라스테어 워드(22)는 "고래를 해변으로 몰더니 주민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작살로 고래를 사냥했다. 아이들도 고래 사체 주변을 뛰어다니거나 고래에 묶인 밧줄을 당기는 등 사냥에 동참했다"며 "고래의 비명이 끔찍했다"고 말했다.

[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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