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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글로벌 포커스]‘21세기 술탄’ 꿈꾸며 美-러시아 사이 불안한 전략적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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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맞선 터키 에르도안의 선택과 대가

동아일보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강하게 맞서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으나 대가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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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지난해 4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독재의 길을 여는 개헌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 전화를 걸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미국 내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일어나자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트럼프와 에르도안의 관계가 급반전하고 있다. 터키가 구금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석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에르도안이 거부한 것이 뇌관이 돼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터키의 맞불 관세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두 ‘스트롱맨’의 강 대 강 대결에 66년 동맹국인 미국과 터키의 관계도 위태로워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미국이 터키에 대한 무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동맹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세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16일 “터키가 브런슨 목사를 석방한다 해도 터키산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동을 넘어 세계 정치 역학구도를 흔드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 서방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

터키는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립 당시 가입을 신청했으나 ‘아시아 국가’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에 참전해 1952년 2월 받아들여졌다. 나토 회원국으로 군사·안보 면에서는 서방과 동맹이지만 이슬람 국가로서 아직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만큼이나 터키가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미 공영라디오 NPR는 최근 터키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지정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미국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국가”라고 전했다. 미국이 터키를 쉽사리 내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미국으로서는 터키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막아주는 핵심 완충국이다. 터키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수니파 이슬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의 전초 기지인 터키를 우군으로 삼아야 했다.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고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려면 터키의 협력이 절실하다.

○ ‘스트롱맨’ 에르도안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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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과 터키의 전통적인 협력 체제에 균열이 나타난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면서부터다.

에르도안은 거리에서 레모네이드와 참깨빵을 팔아 학교에 다닌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총리로 10년 동안 지낼 때는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을 3배 가까이로 키워 제2의 국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2016년 7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에르도안은 최장 2034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개헌을 밀어붙인 데 이어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 정치인, 언론인 등을 대거 숙청하며 폭군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EU로서는 불편한 이웃 국가의 지도자가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의 독재적 통치에 개의치 않고 밀월을 유지했지만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올 초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하고 공격해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어 에르도안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돼 미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터키 정부가 지난달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 한 예다. 당장 미 의회에선 “우리의 기술을 러시아로 넘기는 꼴”이라며 F-35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의 터키 수출 계획을 중단토록 했다.

○ ‘21세기 술탄’ 자승자박하나

미국이 일부 품목에 대해 특혜 관세를 없애자 터키 경제의 취약점이 두드러지며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 불안으로 번졌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독단이 터키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에르도안은 집권 이후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를 호령했던 ‘제2의 오스만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여 왔다. 이를 위해 건설경기 부양과 인위적인 저금리 등 개발 독재 정책을 폈다. 부작용으로 지난해 물가가 10.9%나 올랐지만 가계의 빚 부담을 줄여야 재집권에 유리했기 때문에 저금리를 고집했다.

에르도안이 국민들의 경제 불만을 삭이려고 반미 감정을 활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는 7월 펴낸 보고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미 발언을 포함한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리라화 가치 폭락에서 보듯 문제 해결은커녕 나라를 거덜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터키 카디르하스대의 아흐메트 카슴 한 교수는 NYT에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으나 자칫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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