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His 스토리] 기밀취급권 뺏긴 ‘트럼프 저격수’…존 브레넌 前 CIA 국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기밀취급 권한을 박탈당한 존 브레넌 전(62)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16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들을 보호하는 데 더욱 절박해졌다"며 "그는 자신에게 감히 도전하는 이들에게 겁을 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을 이어가는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퇴임 후 방송과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브레넌 전 국장은 기밀취급 권한을 박탈당하기 전날에도 오마로사 매니걸트 뉴먼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을 ‘개’라고 비유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에 위험한 존재"라며 "그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존 브레넌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8년 8월 14일 MSNBC ‘더 라스트 워드’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MSNB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넌 전 국장은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이젠 그 어느 때보다 뮬러 특검과 그의 팀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누구로부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러시아와 공모가 없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한 마디로 헛소리"라고 했다.

브레넌 전 국장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남은 의문은 러시아와 트럼프 대통령의 공모에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공모를 은폐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특검의 수사를 방해했는지 트럼프 회사의 얼마나 많은 구성원이 자신들의 뒷주머니를 채우며 정부를 속였는지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삭제한 이메일을 찾도록 러시아에 공개적으로 촉구한 점을 들어 "이는 다른 나라에 미국 시민의 정보를 수집하도록 조장한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의 신봉자들이 미국의 주요 적국과 협력하도록 승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낸 성명에서 브레넌 전 국장의 기밀취급 권한을 박탈한다고 밝히고 "그는 최근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전직 고위 관료로서 지위를 이용해 이 행정부에 대한 근거 없고 터무니 없는 주장을 계속 퍼뜨렸다"고 했다. 브레넌 전 국장이 어떤 ‘근거 없고 터무니 없는 주장’을 퍼뜨렸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조작된 마녀사냥"이라며 브레넌 전 국장을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

미 정부는 통상 기밀취급 권한 인가를 받은 인물들에게 퇴임 후에도 일정 기간 국가 기밀 사항을 열람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들이 현 당국자들에게 최신 상황에 맞는 정책 조언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퇴직 후 관련 업계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전관예우’ 성격도 있다.

브레넌 전 국장은 백악관 발표가 있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CIA나 미 국가정보국(DNI)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DNI는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누가 기밀취급 권한을 가질지 결정할 최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일축했다.

조선일보

존 브레넌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3년 3월 8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CIA 국장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백악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넌 전 국장은 CIA에서 30여년을 근무한 ‘대(對)테러 정보통’이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인 2009~2013년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을 지내며 파키스탄과 예멘, 소말리아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무인정찰기(드론) 공격 작전과 특수 임무 병력 배치를 지휘했다.

앞서 2008년 CIA 국장 후보자로 거론됐으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을 방조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스스로 지명 철회를 요청했다. 이후 예멘의 알카에다 조직 소탕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2013년 1월 CIA 국장직에 임명됐으며, 지난해 1월 마이크 폼페이오 현 국무장관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CIA를 이끌었다.

◇ 대통령 셋 보필한 ‘테러 베테랑’…드론·물고문으로 ‘죽음의 관료’ 별칭 얻어

1955년 아일랜드 출신 이민 2세로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브레넌 전 국장은 뉴욕주 포드햄대에 다니던 중 NYT에 난 CIA의 채용 광고를 보고 첩보요원의 꿈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텍사스주립대와 아메리칸대를 거치며 아랍어와 중동 정세 등을 공부, 1980년 관련 지역 분석가로 CIA에 들어갔다.

브레넌 전 국장은 CIA에 입사한 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지부장, 조지 테닛 전 CIA 국장 수석보좌관, 테러업무 총괄센터인 테러방지통합센터(TTIC) 소장을 거쳐 DNI 산하 국가대테러센터(NCTC) 소장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공직에서 물러나 ‘정보·국가안보연맹(INSA)’와 ‘어날리시스 코포레이션(TAC)’ 등 국방·안보 분야의 컨설팅업체 대표로 활동했다.

CIA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세 명의 대통령을 모셨다. 신입 시절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매일 브리핑을 했으며, 9·11 테러 직후 창설된 TTIC가 2004년 NCTC로 새로 개편됐을 때에는 초대 국장직에 임명돼 부시 전 대통령을 보필했다.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오바마 전 대통령은 브레넌 전 국장을 두고 "백악관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그는 이 곳에서도 전설적인 인물"이라며 "그가 지난 4년간 잠을 자기는 했는지 의문"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존 브레넌(테이블 왼쪽에서 네번째)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3년 4월 2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재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백악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넌 전 국장은 백악관에서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드론 공격’을 총괄하면서 3000여명을 사살해 ‘죽음을 부르는 관료(lethal bureaucrat)’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03~2010년 파키스탄·예멘에서 이뤄진 390회의 드론 공격 중 340여회가 브레넌의 손을 거쳤다.

브레넌 전 국장을 항상 따라다니는 또 다른 꼬리표는 ‘워터보딩(waterboarding·물고문)’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 시절 CIA 국장 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테러용의자에 대한 물고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와 관련, 브레넌은 2007년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심문 대상자들이 9·11 테러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옹호하는 입장을 밝혀 진보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물고문에 대해 "미국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금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 퇴임 전부터 트럼프에 ‘쓴소리’…"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힐 선동 정치가" 독설도

브레넌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부터 그의 자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2016년 12월 CIA가 "러시아가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고 밝힌 데 이어 러시아가 ‘트럼프 성매매 동영상’ 등을 갖고 있다는 정보가 유출되면서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비뚤어진 정적들이 가짜 뉴스로 내 승리를 하찮게 만드려고 한다"며 미 정보기관들을 ‘나치 독일’에 비유했다. 브레넌 전 국장은 이에 "나는 트럼프 당선인이 러시아의 능력과 의도, 세계 각지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보기관을 나치 독일과 동일시한 것은 터무니없다. 그 말에 아주 분개한다. 이미 공공연하게 유출된 정보를 놓고 정보기관에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브레넌 전 국장은 이후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압박에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매케이브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퇴임하기 하루 전 전격 해고했을 때가 대표적인 예다. 브레넌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의 부패와 부도덕성, 정치적 비리가 전부 드러나면 당신은 수치스러운 선동 정치가로서 역사의 쓰레기통 안에 걸맞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백악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넌 전 국장은 미 정계가 일제히 ‘굴욕적’이라고 평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반역적"이라며 "그의 발언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그가 완전히 푸틴의 호주머니 안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브레넌 전 국장은 이날 MSNBC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기밀취급 권한을 뺏은 트럼프 대통령을 ‘독재자’에 비유하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나는 외국의 독재자와 폭군, 전제 군주들이 이런 종류의 행동과 조치를 하는 걸 수 년 동안 봐왔다"며 "이걸 미국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박수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