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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같이 가자,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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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함께 살 말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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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야 고치글라’는 ‘2018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의 슬로건이었다. 폭염 속 해군기지가 있는 강정을 출발해 제2공항으로 욱신거리는 성산까지 7월30일부터 8월1일까지 걷는 대행진. 멀리 미국에서 온 이가 그랬다. ‘고치글라’란 제주어가 외국어 같다고. ‘고치글라’는 ‘같이 가자’는 제주어다.(‘고’는 아래아 표기가 맞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중세어 아래아가 살아 있는 제주어. 해서 꽤 어렵지만 빛난다. 어딘들 태사른땅(자기의 태반을 태운 곳, 고향)에서 나온 방언, 고향의 말처럼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주는 말이 있을까.

우리 방언에 대한 부탁들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국어란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이 태를 묻고 성장한 땅의 방언이기도 하다. 이 방언은 세상의 모든 말을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좋은 문체를 지닌 지방 출신 작가의 글을 살펴보면 그 문체가 그의 방언과 표준어의 교섭 속에서 성립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도 있다. 방언은 자주 우리의 언어 감각을 현실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사유와 통찰이 느껴지는 이 문장을 쓴 이는 지난 8월8일 별세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 오랫동안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던 고인의 별세 소식에 깊고 애틋한 애도가 이어졌다. 마침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사소한 부탁>에는 방언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선이 묻어 있었다. 방언에 대한 부탁들이 들어 있었다. 방언을 자기 고백의 언어라고 한다면 표준어를 토론의 언어라고 하더라도 무방하다는 것. 토론은 고백을 끌어안아야 토론이고 표준어는 방언을 포섭해야 표준어라는 것. 공공의 언어는 게으를 수 없다는 것이다. 새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린 우리의 방언에, 남과 북의 말들에 얼마나 시선을 두고 있을까.

서울은 부추를 먹고 부추전을 먹고, 전라도는 솔을 먹고 솔전을 먹고, 경상도는 정구지를 먹고 정구지찌짐을 먹고, 제주도는 세우리를 먹고 세우리전을 먹는다. 이렇듯 ‘부추’ 하나를 놓고 뿜어내는 지역의 언어는 정겹다. 지역어를 살린다는 것은 생태계를 살리는 길이라 한다.

제주엔 평생 제주어를 연구하던 대학교수가 정년퇴임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만든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이사장 강영봉)가 있다. 이 작은 연구소는 소멸되는 제주어를 살리기 위한 채집과 제주어 대중화 작업을 한다. 우리의 방언을 대접하기 위해 깨알 같은 사전 작업도 한다. 얼마 전 이 연구소가 두 돌을 맞아 행한 초청강연에서 “지역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역 언어 연구와 각종 방언 사전 편찬 등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이 통일되는 날을 대비해 여러 지역어가 활용될 수 있도록 복수표준어 확대가 필수적이어야 한다”(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참 그렇다. 통일시대, 남북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정말 필요한 시점 아닌가. 이미 답은 있었다. 2005년 민족 동질성 회복의 첫걸음.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이 시작됐다. 벽을 넘어서기 위해 말과 글이 통합되는 것처럼 귀한 걸음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 남북 경색 국면과 더불어 이 말과 글 작업도 햇볕과 그늘을 왔다 갔다 하는 운명이었다.

남과 북의 언어가 끌어안을 때

이제 새 정부의 겨레말큰사전 작업이 재개됐다. 세계기록유산 ‘승정원일기’의 남북한 공동번역사업 추진 소식도 들린다. 남북의 말과 글의 만남은 혈연의 징표이며, 통일의 긴 대롱이다.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시대와 함께 사라지는 말을 채집하고 남겨놓고, 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국어학자는 북한의 문화어는 이미 방언이 많이 포함된 현실이라고 한다. 우리도 ‘우리말샘’(국민 참여형 국어사전)에 올라온 어휘들을 열면 각 지역의 방언들을 만날 수 있다.

남북이산가족(북한어는 ‘흩어진 가족’) 상봉을 앞두고 있다. 눈물의 재회는 남쪽 언어와 북쪽 언어가 눈물로 달려가 끌어안고 범벅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절실한 말들, 남의 “괜찮니?” 질문에 북은 “일없습네다”로 답할 것이고, “반갑습네다” 운율이 파도를 탈 것이다. 이럴 수도 있겠다. 같이 가자,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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