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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난학, 일본 ‘근대 모험’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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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과 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한겨레

난학(蘭學)의 세계사
이종찬 지음/알마(2014)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열대학 연구자인 이종찬 선생이 펴낸 <난학의 세계사>는 일본이 임진왜란과 명·청교체기에 중화적 세계를 극복하고 열대 무역과 박물학을 통해 유럽 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난학(蘭學)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근대 일본이 만들어졌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난학이란 네덜란드를 지칭하는 ‘화란’(和蘭)의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네덜란드어를 통해 일본이 주체적으로 수용한 서구의 근대학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난학’은 일본 근대의 바탕 이념이 된 학문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고 아는 것처럼 일본의 개항이 단순히 1853년 페리의 흑선 도래로 이루어졌다는 단편적인 상식 이전의 역사를 이해할 열쇠가 된다.

이 책은 크게 두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난학의 개척자인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 1733~1817)가 난학 형성의 유래와 과정을 밝혀 적은 <난학사시>(蘭學事始)를 번역한 것이다. 다른 하나인 ‘열대의 일본, 중화적 세계를 넘어 유럽으로’란 제목의 글은 난학이 네덜란드 상인에게 전수받은 유럽의 문물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아니라 일본과 유럽의 문화적 접속임을 여러 학문적 근거들을 통해 밝혀나간다.

오바마 번의 의사였던 스키타는 네덜란드어로 된 의학서의 인체해부도를 보고 이것이 그간 자신이 알던 중국 의학서와 비교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알기 위해 1771년 처형된 죄인의 인체 해부에 입회한다. 아오차바바(靑茶婆)라 불린 노파의 시체를 해부하여 내장의 배열을 본 결과, 그는 서구의 해부서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반대로 중국의 의학서가 얼마나 틀렸는지 알 수 있었다. 해부 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서를 일본어로 번역할 것을 맹세했다. 스키타와 그의 동료들이 1774년에 출간한 <해체신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사 연구자인 마리우스 잰슨은 이 책의 출판으로 일본의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일본 근대의 사상적 대부로 손꼽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난학이 펼쳐지게 된 전말을 밝힌 스키타의 <난학사시>를 읽으며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정당성을 찾아냈다. 다시 말해 난학은 조공책봉의 중화적 정치질서뿐만 아니라 사물의 질서를 상징했던 ‘중화체제’와 결별하고 서구를 지향하는 일본 근대 모험의 출발점이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동남아시아 무역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막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선박과 상인들은 이른바 주인선(朱印船) 무역을 통해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말라카, 바타비아, 테르나테 등으로 넓혀나갔다. 대동아공영권이란 어느날 갑자기 근대 일본의 제국적 욕망에 의해 창안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난학자들이 구상했던 지리적 ‘상상의 공동체’에 근거해 만들어진 영토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아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란 우스개가 있다. 최근엔 주요 2개국(G2) 중 하나로 떠오른 중국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농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자신만만함이 주변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우리 민족이 버티고 살아남은 요인 중 하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이 실은 우리가 그들을 잘 모르기에 생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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