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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공정위 시정명령 코웃음치는 `돌비`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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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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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음향기술 회사 돌비의 횡포는 국내 제조업체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그런데도 국내 업체들이 계약 해지나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상 돌비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음향이나 소리를 아예 낼 수 없는, 돌비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1965년 영국에서 설립된 돌비는 영화의 잡음을 없애는 기술로 시작해 현재 사운드와 영상 특허 4000개 이상을 보유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사운드업계에서 "돌비와 비견할 후발 주자는 없다"는 평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돌비 음향기술은 영화 드라마 등 대부분 영상 콘텐츠에서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돌비는 AC-3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오디오 코딩 기술표준을 보유하고 있어 디지털 오디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돌비에서 라이선스 권한을 취득해야 한다. 디지털 TV, 셋톱박스, 블루레이, 카메라 등 사운드를 내야 하는 기기 중 돌비 기술을 사용하는 곳은 돌비에서 기기 하나당 라이선스 비용을 낸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LG 등이 매년 돌비에 수천억 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라이선스 수익은 돌비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오디오 제조사 관계자는 "우리 같은 중소업체는 물론이고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도 돌비 특허를 쓴다. 돌비 특허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제품 생산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했다.

문제는 디지털 오디오 관련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돌비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해 돌비가 계약 과정에서 각종 부당한 조건을 내걸고 감사 과정에서 과도한 페널티를 요구하고 있다는 업체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는 돌비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업체에 계약 범위 안에서 자사 기술을 사용하고 무단으로 도용하지는 않았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돌비 요구에 따라 통상 2~4년에 한 번꼴로 감사가 진행된다. 감사 과정은 국내 업체들에 '지옥' 같은 기간으로 통한다. A업체는 돌비와 계약을 맺지 않은 일부 제품에 대해 돌비가 자사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느라 1년째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A사는 "돌비가 요청한 자료를 당사가 제공했음에도 돌비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돌비는 문서를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페널티를 요구했다"고 했다.

A사가 페널티를 받아들이지 않자 돌비는 기존 자사 제품 사용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돌비 기술은 셋톱박스의 뇌라 할 수 있는 CPU에 자동 탑재돼 있다. 돌비가 기술 사용을 중단시키면 셋톱박스의 CPU가 작동하지 않는다. A사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CPU 공급이 중단되면 막대한 영업 손실과 더불어 고객사에서 엄청난 페널티가 있기 때문에 돌비를 상대로 어떠한 협상력도 갖지 못한다"고 했다.

돌비는 올해 초 B업체에 새 음성코덱 표준 필수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요구했다. 표준 필수 기술을 제외한 돌비 음성코덱 관련 특허를 모두 포함시켜서 라이선스를 구성했다. B업체는 새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 앞으로 해마다 수십억원의 로열티를 내야 한다. B업체는 "기존 계약이 만료되면 특허 로열티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 돌비 요구로 또 다른 지출을 하게 생겼다"고 했다.

음향기기 C업체는 "돌비와 라이선스를 맺을 때 모든 것에서 돌비 요구를 들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 많은 손실이 일어나지만 돌비 기술 없이는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돌비가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고 했다.

돌비는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갑질'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공정위 조사로 돌비가 지식재산권 침해 우려만으로도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하고, 사전에 보고한 물량과 감사로 확인된 물량 차이가 미미한 경우에도 국내 사업자가 손해배상과 제반 감사비용을 전부 부담하도록 계약한 것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돌비가 국내 사업자에 라이선스 계약 시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설정했다며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로 보고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돌비의 갑질은 고쳐지기는커녕 심해지고 있다고 업계는 우려했다. 정우성 특허법인 임앤정 변리사는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있고 이로 인해 압박을 받는 기업이 대다수라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특허권에 대한 권리남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그런 피해를 입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업체라면 정부 당국에서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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