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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억 속 그 건물 맞나요?” 과거의 공간에 꽃핀 현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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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은 공장,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 해서 만든 카페나 전시 문화 공간은 이제 일부 힙스터만의 소유물은 아니다. 그만큼 수도 많아졌고, 울타리를 낮춰 우리 곁에 더욱 가까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기대를 안고 그곳을 찾을 땐 ‘건물에 기록된 시간’을 온전히 느끼기엔 2% 아쉬움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건물’들이 더욱더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공간이 지닌 ‘고유의 특징은 살리되’,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며 ‘어울림을 실천하는’ 곳. 그리고 창의적인 도전이 더해져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곳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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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는 예술로(路)

낙원악기상가×'Becoming a Chair展'

1960년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누구나 멋처럼, 생활처럼 통기타 하나씩 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쎄시봉에서 시작된 이러한 통기타 열풍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악기 시장은 유례없는 활기를 띠었다. 당시 낙원악기상가라는 장소는 일종의 사랑방이었다. 당대 악기 좀 다룬다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저마다 정보를 교류하고,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악기 수요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낙원악기상가 역시 도심 재창조를 명목으로 철거 위기에까지 놓였었다.

그러다 낙원악기상가 건물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보존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한강대교 밑에서 채취한 고품질의 모래와 자갈로 시공한 건물이 매년 진행하는 건물안전진단에서 B등급을 받음으로써 철거 계획이 철회된 것이다. 이곳은 이제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건물의 위치와 독특한 구조상 겉모습은 과거 그대로지만, 내부는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해오며 고전적인 멋과 현대적인 쾌적함이 동시에 공존한다.

도로 위에 지어진 낙원악기상가. 그 구조를 살펴보면 1층은 낙원동과 안국역을 가로지르는 삼일대로가 지나가고 있다. 2층과 3층에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건반악기, 장비 전문 매장 등 총 300여 개 전문악기 매장이 밀집해 본래 악기상가의 명맥을 잇는다. 그리고 4층으로 향해보면, 이곳의 탁 트인 전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초록빛 무성한 야외 공연장, 손 그림으로 꾸며진 실버영화관의 포스터…. 그렇게 꾸며진 문화 시설 외에도 합주실과 녹음실, 그리고 신진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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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악기상가 4층 전시공간 d/p. 이곳은 신진 기획자와 아티스트를 발굴해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상시 진행 중이다. 현재는 설치 작가 두이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두이 작가는 시간을 주제로 짧은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 속 장소를 의자, 액자, 모퉁이 등을 이용해 재현하는 공간 예술을 진행해왔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2011년부터 7년간 작업해온 작품과 올해 새롭게 작업한 영상, 글 등을 한 곳에 모아 스토리텔링 형식의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한 편의 연극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작품의 스토리에 따라 관람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 속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된다.

▷Info 위치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시간 평일, 토요일 09:00~20:00, 일요일은 일부 매장 오픈 일시 2018년 7월5일~8월24일 시간 화~토 13:00~19:00 *공휴일 휴관 장소 낙원악기상가 417호

▶한국의 아키하바라에서 펼쳐진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의 세계관

용산 나진상가×'갤럭시오디세이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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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와 망토를 뒤집어 쓴 채 밀실에서 가장 먼저 총을 집는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드는 우주의 전망과, 전시장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어우러지자 마치 추억 속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듯한 상상이 절로 펼쳐진다. 공간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커다란 몸체를 이리저리 꿈틀대고 있는 기계백작과 마주한다. 그 앞에 멈춰 서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이 모든 것이 1980년대 추억의 명작 만화 <은하철도 999>를 집중 조명한 전시 <갤럭시오디세이展: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펼쳐지는 모습이다. 일본의 국민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그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은하철도 999>를 주제로, 작가의 우주관을 오마주한 미디어 아트 작품과, 마츠모토 레이지의 64년간의 작업 세계, 그리고 총 10팀의 국내 주요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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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세계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마츠모토 레이지의 2017 최신작 원화 <미래도시>를 포함한 희귀판 클래식 피규어 60여 점, 코믹북, 도서 약 200권, 음반, 게임 등 기타 오리지널 컬렉션 약 50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밖에도 아카이브룸, 만화룸에서는 <은하철도999>를 다양하게 체험해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섹션에선 <은하철도 999>의 에피소드와 작가의 우주관에서 영감받은 것을 주제로 총 10팀의 국내 다분야 아티스트들의 오마주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만화 속 한장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내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비주얼 아티스트 유하다 작가의 ‘꽃들의 별’, 일러스트레이터 집시(ZIPCY)의 ‘메텔’ 작업 등 국내 작가들의 작업방식으로 마주한 <은하철도 999>의 모습을 만나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 마지막 세 번째 체험 섹션은 ‘은하철도999호’에 탑승한 듯, 책과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야기들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 공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체험 섹션으로 디지털샤워룸부터 인터렉티브 미디어룸, 다프트펑크(Daft Punk) 뮤직비디오룸, VR룸 등이 전시 중앙홀까지 이어진다.

▶새로운 문화놀이공간의 도래

피크닉×'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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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아래 위치한 회현동. 하늘 높이 솟은 오피스 건물들이 곳곳에 밀집해 있는 이곳을 보면 언뜻 ‘회색도시’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자 빌딩 뒤에도, 골목 사이사이에도 세월의 때가 탄 상가 건물, 저택들과 긴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토박이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이처럼 회현동만이 지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며, 앞으로 써 내려갈 마을 이야기의 하나가 되길 바라는 공간이 우리 곁을 찾았다.

1970년대 한 중견 지약 회사의 사옥으로 지어진 후, 시간이 멈춘 채 40년을 지내온 서울 도심의 구식 건물. 붉은 타일의 건물 외벽과 육중한 지붕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은 만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이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재탄생했다. 건물의 일부는 보존하고, 일부는 현대의 감각에 맞춰지자 레트로한 감성을 온몸으로 내뿜는다. 이곳이 바로,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마련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이다. 피크닉은 개관 행사로 오는 10월14일까지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 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뮤지션이자 아티스트, 사회운동가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이자, 대규모 음악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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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는 전자음악그룹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성공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솔로 음악 활동을 병행해 왔다. 수많은 걸작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 참여 작곡가로 활동하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로 우뚝 섰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러한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수십 년간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제시해오고 있다.

전시는 유성준 작가의 ‘세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곳(Where the three flows intersect)’으로 시작된다. 투명한 커튼으로 둘러싸인 방. 그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아보자. 눈 앞에 놓인 세 개의 스크린 중 가운데에는 <남한산성><토니 타키타니><분노> 등의 영화들(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담당했다)이 상영되고 있다. 왼쪽 스크린에는 사카모토가 연주나 지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오른쪽에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짓는 표정과 행동들이 보여진다. 관람객들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정서, OST가 영화 안에서 빚어내는 정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정서, 이 세 가지가 교차하는 순간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년에 발표한 ‘async’와 더불어, 태국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이 작업한 영상작품, 백남준과 함께한 ‘All Star Video’의 진귀한 영상들, 일본 YCAM에서 작업한 대규모 설치미술 등 그가 직접 제작했거나 영향을 주고 받은 동료 아티스트와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작품들로 구성돼 종합적인 멀티미디어 아트의 장이 펼쳐진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음악전시를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40년에 걸쳐 다다르게 된 현재와 앞으로 향해 갈 미래에 대해 가늠해 볼 수 있다.

Info 위치 서울 중구 퇴계로 6가길 30 전시 기간 2018년 5월26일~10월14일 *월요일 정기 휴무 시간

전시장 11:00~21:00(입장마감 20:00), 카페 10:00~18:00

입장요금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 원

▶문화적 나그네들의 사랑방에서, 문화공간으로

통의동 보안여관×'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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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2-1번지. 이곳에 위치한 ‘통의동 보안여관’은 80여 년의 세월 동안 여관이라는 이름 그대로 나그네를 위한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머묾과 떠남이 공존하는 공간이 여관이지만, 통의동이라는 위치적인 기능 때문인지 이곳은 당대의 문학가들이 모이는 문화공간,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통의동의 문화적 발자취를 잠깐 따라가보자면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 무명의 화가를 가르치고, 겸재 정선이 벗들과 노닐었으며,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 묘사한 ‘막다른 골목’을 지칭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서정주, 김동리 선생들이 기거하면서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곳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그렇게 문화생산지로 역할을 해오던 보안여관은 2004년까지 여관으로 영업을 해오며 일반인, 문화예술인, 문화재관리국 관리인들이 지친 몸을 누이는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야말로 80년의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의 숨결과 역사가 서린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2007년부터 문화숙박업으로 생활 밀착형, 장소 특성적 예술을 생산하기 시작,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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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때때로 전시, 퍼포먼스 또는 문화 프로그램 등이 다양하게 열린다. 태양이 내리쬐는 8월 초. 이날도 어김없이 전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2층짜리 여관을 찾고 있었다. 투박하게 쓰인 옛 간판을 따라 입구에 들어서니, ‘훅’ 하고 더운 공기가 엄습한다(전시장 내에 냉방 시설이 없다). 건물 안의 골자나 구조는 옛 여관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따뜻하게 사람들을 맞이했을 듯한 (내 상상에 불과하다) 입구는, 지금은 관람객에게 전시 안내 자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입구와 가까운 방은 텅 비어진 채로 남아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전시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지난 8월7일까지 진행된 이 전시는 넥스포2018의 일환으로 진행,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아르헨 지역의 일곱 개 장소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중심에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네덜란드는 전체 국토가 우리나라의 삼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며 인구도 또한 2018년 기준 약 1700만 정도에 불과하지만, 네덜란드의 도시재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배경, 가치관과 역할을 통해 창의적인 도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장소 만들기’를 통해 보여준다. 역할을 잃은 장소가 다시금 태어난 곳에서, 먼 나라의 도시재생 사례를 만나보는 것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Info 위치 서울 종로구 효자로 33 공간구성 전시장(통의동 보안여관 1, 2층), 보안여관-문화예술생산공간(신관 Boan1942 건물 3, 4층), B Bridge·보안책방·한권서점(Boan1942 2층), 일상 다반사(Boan1942 1층) 입장요금 무료

[글 이승연 기자 사진 이승연, 낙원악기상가, <갤럭시오디세이>전, 글린트, 보안여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42호 (18.08.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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