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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여기, 지리산 안한수내에 올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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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폭염 속 지리산 올무 수거 나선 시민들

서서히, 고통스럽게 몸 죄는 죽음의 덫

서식지 확대한 지리산 반달곰 숨지기도…

불법 올무 설치 대신 농가 보상책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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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올무 수거를 위해 모인 이 날, 한낮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살인적인 더위에 올무 수거라니, 연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올무에 걸려 죽은 반달곰 사진을 보고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분들이 있어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올무 수거를 위해 간 곳은 ‘안한수내’다. 안한수내는 지리산 자락의 평범한 산촌이지만 마을 앞을 흐르는 물과 숲이 좋아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찾는 외지인들이 있을 정도로 나름 유명한 마을이다.

그런데 국립공원종복원기술원의 자료를 보니, 평범하면서도 나름 유명한 이 마을 뒷산에서 유난히 많은 올무가 수거됐다. 물과 숲이 좋으니 야생동물도 많이 오는 걸까. 그리고 그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사람들도 몰리는 걸까. 그건 모르겠다.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나 안한수내는 꾸준히 올무가 수거되는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이날 민간차원의 자발적이고 꾸준한 올무 수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첫 활동 장소로 안한수내를 택한 것은 올무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마을 입구에 모인 11명의 사람들이 활동 지침을 공유했다. 올무를 수거할 때는, 뱀이 나올 수 있으니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다녀야 한다. 그리고 올무는 동물이 다니는 길에 놓여 있으니 동물 길을 유심히 살피면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혼자서 다니면 위험하므로 반드시 2인 이상 다녀야 한다.

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 일행을 만난 주민이 “나도 수시로 산에 가는데 올무는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가보라”며 현황을 전했다. “그런데 정말 멧돼지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뭔 대책을 세워줘야 할 게 아니냐”고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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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얘기처럼 산 중턱을 오르자 멧돼지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평생을 땅에서 살아온 농민에게 자식만큼 소중한 농작물이 동물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열매 한 알 수확하기 어렵게 된다는 건, 당해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무는 야생동물이 다니는 길에 놓는다. 올무는 살아있는 나무나 묵직한 나무토막에 묶어 설치한다. 나무토막에 묶인 올무에 걸린 동물은 그 나무토막까지 끌고 다니다가 바위나 큰 나무, 덩굴 등에 나무토막이 걸리면서 생명을 잃게 된다. 올해 6월 백운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반달곰, 2011년 안한수내 뒷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반달곰 등은 모두 나무토막에 묶인 올무에 희생되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샅샅이 훑었으나 올무는 없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올무가 안 나와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올무를 놓는 때도 아니고, 올무가 있다 해도 숲을 뒤덮은 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시기라는 말과 함께.

일행은 이왕에 왔으니 근처 다른 곳도 이번에는 마을의 오른쪽 산을 올랐다. 비탈, 바위, 무성한 풀, 걷기도 힘든 곳에서 농사지으며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이 올무를 놓는 건, 일상의 삶을 사는 평범함일 수도 있다. 반달곰을 잡기 위해서도 아니고, 올무에 걸려 죽은 야생동물을 팔기 위해서도 아닌 행위. 그런데 그 올무가 동물을 서서히 죽게 하는, 살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쇠줄에서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조여드는 끔찍한 살상무기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더는 올무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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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르고, 야생동물이 다닐만한 길을 살피는 중에 한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 올무가 있다!” 반갑지 않은 소리에 모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밭 한가운데였다.

두겹의 쇠줄로 만들어진 올무, 쇠줄 굵기로 봐선 오소리용이었는데, 올무 반경으로 보기엔 멧돼지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됐다. 올무가 동물을 몸을 어떻게 조이는지 확인하고, 이를 거둬 해체하는 가운데 모두의 얼굴에 두려움과 착잡함이 오갔다.

수거된 올무는 구례군 환경교통과에 신고해 처리를 요청하고, 결과를 통보해달라고 했다. 올무를 놓는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니 경찰서에 신고해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고 지자체를 찾아간 이유는, 지금 필요한 건 올무를 놓는 누군가를 색출해 처벌하는 것보다 주민들과 소통하고 올무 설치의 문제점과 불법성을 더 깊게 공유하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8년 8월에 시작한 올무수거활동은, 올무가 사라지는 날까지 꾸준히 계속될 일이지만 우리 힘으로 세상의 모든 올무를 수거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환경부와 ‘올무수거전담반 설치’의 필요성을 공유해볼 계획이다.

윤주옥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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