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이경자의 내 인생의 책]④ 달의 제단 - 심윤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잊히지 않는 장면들

경향신문

장편소설 <달의 제단>은 2004년에 초판이 발행됐고 나는 초판을 읽은 독자다. 그러니 벌써 14년 정도가 흘렀다. 기억의 창고를 뒤적이는 힘이 미약해져서 무얼 떠올리거나 돌이켜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데도 어떤 소설의 장면들은 잊히지 않는다. <달의 제단>이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 조상룡의 17대조는 선조 때 사람이다. 소설 속의 무대인 효계당은 그의 14대조가 중건했고 그 후 쇠락과 몰락을 거듭했다. 상룡의 할아버지는 탁월한 능력으로 전후(戰後)에 거부(巨富)가 됐는데 그의 꿈은 효계당의 영광, 곧 가문을 되살리는 것이다. 상룡이 제대하고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모시 보에 감싼 옛날 편지를 번역하게 한다. 옛 봉분을 이장하다가 나온 편지뭉치였다.

소설은 현재와 편지 속의 과거가 빈틈없이 짜이며 소설의 주제를 완성해간다.

편지 속에는 시대를 달리한 또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등장한다. 남존여비와 출가외인의 이념적 가치가 미풍양속이던 시대의 비극은 소설의 마지막 편지 속에 선혈처럼 드러난다. 편지를 읽은 상룡은 할아버지에게 ‘진실이 추악하다’고 편지의 내용을 일컬어 말한다. 할아버지는 편지를 불태워 진실을 없애려 하고 상룡은 진실을 드러내려 하다가, 효계당의 추악한 진실, 그 비밀과 비극도 불탄다.

“할아버지가 꿈꾸던 것들은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통문화가 절멸되고 이 땅에 제사라는 의식이 모두 사라진 뒤라도 효계당에서만은 피어오르기를 소원했던……수백년 이어진 유서 깊은 가문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었다.”

<달의 제단>을 읽고 난 박완서 선생님은 '전율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은 심윤경 소설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자 소설가·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