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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어머님의 손을 놓고~~’ 슬픈 고모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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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지난 14일 오전, 대구 수성구 고모역 대합실 안에 가수 현인이 1948년에 발표한 곡인 ‘비내리는 고모령’이 울려 퍼졌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역무원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매표소였던 공간은 작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은 벽에 걸린 예전 열차와 역의 안팎을 담은 풍경 사진을 둘러 보거나, 1920~30년대 나팔형 축음기와 타자기 등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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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김정환씨(72)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고모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구역에서 내려 인근 전통시장에서 포도를 내다 팔곤 했다”면서 “생계형 행상으로 북적이던 대합실이 전시관으로 바뀌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지역민의 애환이 깃들었던 대구 수성구 ‘고모역’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1925년 간이역으로 시작해 2006년 문을 닫은 이 역을 대구시가 지난해 8월부터 국비 등 9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이달부터 시민에게 개방된 고모역에는 대구·경북 지역의 철도 역사 자료와 가요·사진·영상·물품 등을 모아둔 전시관과 추억을 떠올리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벤치 등이 마련됐다. 역사(115㎡) 등 연면적 2229㎡(약 675평)의 공간에는 고모역을 소개한 신문·잡지와 LP판, 영화 포스터 등이 시대 순으로 진열돼 있다. 또 태블릿 PC를 통해 1930~50년대 가요를 직접 들어볼 수 있고, 라디오·영사기 등 골동품도 비치해 방문객들이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역무원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체험 활동도 즐길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전시관에 들른 장동식씨(58)는 “1970년대 후반 고교시절 친구들과 이 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구의 고등학교로 통학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면서 “마치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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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지 인근에 놓여진 ‘고모’(顧母·돌아볼 고, 어미 모)역은 일제감점기 징병가는 자식과 어머니가 생이별한 장소로 유명했다. 이후 광복과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1970~80년대 학생·보따리상의 이용이 늘면서 활기를 띄었다. 1990년대까지도 이 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구 지역 전통시장으로 농산물을 팔러 나가는 주민이 많았다. 하지만 산업구조 변화 등에 따라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줄었고, 2004년 여객 운송 업무가 중지됐다. 이듬해에는 노선이설사업에 따라 대구선이 새롭게 놓였고, 2006년 9월에는 화물 운송 기능마저 잃고 폐쇄 조치됐다.

우상정 대구시 도시재창조국장은 “고모역은 과거 이별의 공간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만남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면서 “시민들이 잠시나마 추억을 되살리며 문화를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경열·박태우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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