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계파정치 청산 ‘오금 모임’…민주당 전대서 왜 사라졌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223

당 지도부 선출 대의원 투표 ‘오더’ 금지하던 위원장 모임

2013·2015·2016 확산 추세···8·25 전당대회 앞두고 사라져

모임 주동자 없고 오더 자체가 안 먹히는 풍토 때문인 듯

“대의원 정치의식 높아졌고 대표후보 우열 가리기 어려워”



관성의 법칙은 물체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없던 것이 나타나면 낯설지만, 때가 되면 으레 나타나던 것이 나타나지 않아도 어색합니다.

8월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즈음이면 꼭 얼굴을 내밀던 모임이 있습니다. ‘오금 모임’입니다. 오금은 ‘오더 금지’의 줄임말입니다.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당 지도부 선출에서 투표 반영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대의원들의 투표입니다. 대의원 중에서도 각 지역위원회에서 선출하는 대의원이 가장 많습니다. 각 지역위원회 대의원 선출 과정에서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의 영향력은 상당히 큰 편입니다. 따라서 당 지도부 선거에서 지역 선출 대의원은 위원장의 지시(오더)를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계파 정치가 판치던 시절 당권을 노리는 각 계파 수장이나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은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을 회유하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거나 당직 및 공천을 약속했습니다. 위원장의 최종 ‘오더’는 주로 전당대회장으로 출발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지구당 고참들을 통해 은밀하게 내려졌고 전당대회장에서 실제 대의원들의 투표로 이어졌습니다.

위원장의 오더에 의해 대의원들이 움직이는 이런 시스템과 문화는 계파 정치의 부산물입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았습니다. 민주당에서 ‘오더 금지 모임’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더 금지 모임이 처음 출현한 것은 2013년입니다. 5월4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가 열렸습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패한 뒤 문희상 비대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였습니다. 김한길-이용섭-강기정 후보가 대표 자리를 놓고 겨뤘습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4월11일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중진 의원들이 오더 금지 모임을 발족시켰습니다. 유인태 의원이 주도했습니다.

4월30일 오더 금지 모임은 56명으로 불어났고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명단을 공개한 이유는 “모임에 동참한 지역위원장이 본 취지와 달리 대의원에게 오더를 내릴 경우 전대 후라도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오더를 내린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56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강창일(제주시갑) 2.권기수(충북 제천.단양) 3.김동철(광주 광산갑) 4.김동환(충북 충주) 5.김부겸(대구 수성갑) 6.김상희(경기 부천시 소사구) 7.김성곤(전남 여수갑) 8.김성주(전북 덕진) 9.김승남(전남 고흥.보성) 10.김영춘(부산 진구갑) 11.김영환(경기 안산시 상록을) 12.김재윤(제주 서귀포시) 13.김춘진(전북 고창.부안) 14.노웅래(마포구갑) 15.문희상(경기 의정부갑) 16.민병두(동대문구을) 17.박병석(대전 서구갑) 18.박완주(충남 천안을) 19.박재호(부산 남구을) 20.박정(경기 파주시을) 21.박준(경기고양시 덕양구갑) 22.배기운(전남 나주시 화순군) 23.배준현(부산 수영구) 24.백재현(경기 광명갑) 25.서영교(중랑구갑) 26.신경민(영등포구을) 27.신기남(강서구갑) 28.신학용(인천 계양구갑) 29.심재권(강동구을) 30.안민석(경기 오산시) 31.양승조(충남 천안갑) 32.오영식(강북구갑) 33.오제세(충북 흥덕갑). 34.우원식(노원구을) 35.우윤근(전남 광양시 구례군) 36.원혜영(경기 부천시 오정구) 37.유기홍(관악구갑) 38.유승희(성북구갑) 39.유은혜(경기 고양 일산동구) 40.유인태(도봉구을) 41.윤후덕(경기 파주시갑) 42.이낙연(전남담양,함평,영광,장성) 43.이목희(금천구) 44.이미경(은평구갑) 45.이상민(대전 유성구) 46.이정환(부산 남구갑) 47.이학영(경기 군포시) 48.이해성(부산 중동구) 49.인재근(도봉구갑) 50.전병헌(동작구갑) 51.조경태(부산 사하구을) 52.조순용(용산구) 53.조정식(경기 시흥을) 54.천정배(송파구을) 55.추미애(광진구을) 56.홍익표(성동구을) <가나다순>



몇 사람이 더 참여해 오더 금지 모임은 최종적으로 5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5·4 전당대회에서 김한길 대표와 신경민·조경태·양승조·우원식 최고위원이 선출됐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한길 안철수 대표의 전격 합당 선언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습니다. 두 공동대표는 2014년 7·30 재보선 패배로 물러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했습니다. 문재인-박지원-이인영 후보가 격돌했던 바로 그 유명한 전당대회였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유인태 의원 주도로 ‘오더 금지 모임 시즌 2’가 결성됐습니다. 1월19일 활동을 시작한 오더 금지 모임은 열흘 만에 원내 36명, 원외 28명, 모두 64명의 지역위원장을 확보해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강창일(제주시 갑), 고연호(서울 은평을), 고인정(경기 평택갑), 권문상(경남 산청거창함양), 김관영(전북 군산), 김교흥(인천 서강화갑), 김기영(서울 서초을), 김동철(광주 광산갑), 김민철(경기 의정부을), 김병욱(경기 분당을), 김부겸(대구 수성갑), 김비오(부산 영도), 김상희(경기 부천소사), 김성곤(전남 여수갑),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김영춘(부산 진구갑), 김영환(경기 안산상록을), 김종길(경남 창원진해), 김종희(경기 용인병), 김홍진(경북 영주시), 노웅래(서울 마포갑), 문학진(경기 하남), 문희상(경기 의정부갑), 박병석(대전 서구갑), 박수현(충남 공주), 박영선(서울 구로을), 박용모(서울 송파을), 박정(경기 파주을), 박주선(광주 동), 박준(경기 고양덕양갑), 백재현(경기 광명갑), 변광용(경남 거제), 서소연(경남 진주을), 소병훈(경기 광주), 송호창(경기 의왕과천), 신경민(서울 영등포을), 신학용(인천 계양갑) 안민석(경기 오산), 어기구(충남 당진), 오일용(서울 화성갑), 오제세(충북 청주흥덕갑), 원혜영(경기 부천오정), 유기홍(서울 관악갑), 유성엽(전북 정읍), 유인태(서울 도봉을), 윤준호(부산 해운대기장갑), 이개호(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이근규(충북 제천단양대행), 이미경(서울 은평갑), 이상민(대전 유성), 이언주(경기 광명을), 이용선(서울 양천을), 이원욱(경기 화성을), 이정국(경기 안양동안을), 이종걸(경기 안양만안), 이찬열(경기 수원갑), 이해성(부산 중구동구), 장병완(광주 남구), 전원근(서울 강남갑), 전정희(전북 익산을) 정성호(경기 양주동두천), 조정식(경기 시흥을), 추미애(서울 광진을), 홍익표(서울 성동을)



64명은 전당대회 전까지 73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 뒤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 의원 탈당 등 우여곡절을 거쳐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1당으로 올라섰습니다.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추미애-이종걸-김상곤 후보가 대표직을 놓고 경쟁했습니다.

이번에는 5선 원혜영 의원이 오금 모임을 주도했습니다. 4선 이상 중진 의원 13명이 8월5일 ‘계파와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혁신 전대를 준비하는 지역위원장들의 모임’(약칭 오더 금지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이들은 제안서를 전국 253명의 원내·외 지역위원장들에게 발송하고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무려 109명의 원내외 위원장이 참여했습니다.



(원내) 강병원, 강창일, 강훈식, 고용진, 권칠승, 김경수, 김두관, 김병욱(성남 분당을), 김부겸, 김상희, 김영춘, 김정우, 김종민, 김진표, 김철민, 김한정, 김현미, 노웅래, 문희상, 민병두, 민홍철, 박병석, 박영선, 박용진, 박재호, 박 정, 박주민, 박홍근, 백재현, 백혜련, 변재일, 설 훈, 송기헌, 송영길, 신경민, 심재권, 안규백, 안민석, 안호영, 양승조, 어기구, 오영훈, 오제세, 우원식, 원혜영, 위성곤, 유동수, 유승희, 윤호중, 윤후덕, 이개호, 이석현, 이언주, 이찬열, 이훈, 정성호, 정재호, 조승래, 조응천, 조정식, 표창원, 한정애, 홍영표(이상 63명)

(원외) 강래구, 강세현, 고영인, 권문상, 권성중, 김경수, 김기영, 김기운, 김민철, 김성곤, 김시화, 김영록, 김우룡, 김재무, 김정식, 김춘진, 김태용, 박규홍, 백두현, 변광용, 서소연, 손창완, 엄태준, 유진현, 윤종기, 이병훈, 이상덕, 이성로, 이용빈, 이우현, 이재한, 이정근, 이후삼, 장기태, 정동균, 조영진, 조택상, 진성준, 천준호, 최대호, 최민희, 최 진, 최호열, 하정렬, 허대만, 허종식(이상 46명)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계파 정치 종식을 위한 ‘오더 금지 모임’은 민주통합당 2013년 5·4 전당대회 당시 59명, 새정치민주연합 2015년 2·8 전당대회 당시 73명, 2016년 더불어민주당 8·27 전당대회 당시 109명으로 계속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8·25 전당대회에서도 ‘오더 금지 모임’이 당연히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대표 및 최고위원 투표에서 대의원 비중이 줄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대의원 표심을 무려 45% 반영합니다. 대의원 1만7000명 가운데 지역위원회 선출 대의원은 1만1000명입니다. 한 지역구에서 평균 44명씩의 대의원을 선출합니다. 대의원 선출 과정에서 위원장 입김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여전합니다.

대의원은 지역위원회 선출 대의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그리고 당 소속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보좌진 2명도 대의원입니다. 이들도 국회의원과 위원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번에는 ‘오금 모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더불어민주당 당규가 오더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4년 정치혁신실천위원회(위원장 원혜영)는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의 선거캠프 참여와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지지 또는 반대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어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당규에 포함했습니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 33조(금지하는 선거운동 행위)는 “선거운동을 함에 있어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금지한다”며, 10호에 “국회의원, 시·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이 후보자 캠프에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행위”, 11호에 “국회의원, 시·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이 공개적이면서 집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적시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공개적이면서’ ‘집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내외위원장이 대의원에게 하는 이른바 ‘오더’는 본래 대의원들에게 ‘은밀하면서도’ ‘개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당규가 제정된 이후인 2016년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도 오더 금지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따라서 당규 때문에 오더 금지 모임이 필요 없다는 설명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3선 의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의원들이 드러내놓고 오더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 같다. 대의원들은 자기 지역위원장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대략 안다. 그래도 위원장 의중대로만 따르지는 않는다. 자기 지역 대의원 70~80%를 좌지우지하는 지역위원장은 그리 많지 않다. 대의원들은 친노-친문 정체성, 민주화 운동 경험, 호남 연고 등에 따라 움직인다.”

“그동안 유인태, 원혜영 선배가 오더 금지 모임을 주로 이끌었다. 그런데 유인태 선배는 이제 국회의원이 아니고 원혜영 선배가 이번에는 이해찬 대표를 밀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위원장의 성향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친문, 더미래, 민평련 셋 중 하나다. 셋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위원장들은 본래 오더 자체를 내리지 않던 사람들이다.”

“첫째, 오더 금지 모임을 주동하는 인사가 없다. 둘째, 위원장의 오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권리당원의 다수가 친문이다. 정치의식이 높은 그들에게 오더를 내릴 수 없다. 대의원도 과거에는 위원장이 사실상 단독으로 임명했는데 이제는 선출 절차를 밟아서 뽑는다. 대표후보로 나선 세 사람의 우열이 크지 않아서 의원들이 섣불리 오더를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수도권 3선 의원들 이외에도 수도권 재선 국회의원, 초선 국회의원, 원외 지역위원장 등 여러 사람에게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에게 누구 찍으라고 ‘오더’를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대부분 ‘오더’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비슷했습니다.

“대의원들은 내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다 안다. 알아서 찍을 것이다. 또 나와 생각이 다른 대의원은 내가 오더를 한다고 생각을 바꿀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오더를 따로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대표후보 세 사람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도 마음에 안 드는데 대의원들에게 누구를 찍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그래서 오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모든 사람이 친문주류이거나 친문주류를 지향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오더를 누가 내릴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대체적인 진단은 위원장의 오더가 잘 먹히지 않을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가 진전됐기 때문에 오더 금지 모임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또 친문재인 성향 일색으로 천하 통일이 됐기 때문에 오더 금지 모임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서는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진짜 ‘오더’가 사라질까요?

세상사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8월25일 전당대회가 끝나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의원이나 위원장의 ‘오더’를 받는 분들은 저에게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