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9월 평양정상회담', 1·2차 회담과 다른 점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햇볕정책 추진 DJ, 박지원·임동원 파견 / 남북정상 간 첫 공동선언 합의 이뤄내 / 盧, 北 핵보유선언으로 한반도정세 급변 / 정동영·김만복 등 평양 보내 막후교섭

세계일보

남북한이 13일 ‘9월 안 평양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상 가운데 세 번째로 평양 땅을 밟게 됐다.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11년 만이다. 이번 방북에서 문 대통령은 올 들어 두 차례나 열린 4·27, 5·26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번째 만남을 갖는다.

이번 회담 개최 합의에는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형성된 남북 간 공식·비공식 라인이 정상가동됐다.

세계일보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이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마중 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남북, 북·미 관계가 어그러져 있던 앞선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 때에는 ‘특사 파견’을 통한 막후 교섭이 돌파구를 낼 수 있었다.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정부에서는 2000년 3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북한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과 중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어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 등과 만나 정상회담 의제 등에 대한 사전 조율을 마칠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2박3일간 방북 일정에서 김 위원장을 세 차례 만난 끝에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등의 내용이 담긴 6·15 공동선언은 기존 남북 합의와 달리 사상 최초로 정상 차원의 합의라는 의미가 있다.

세계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회담한 뒤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2005년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대북 특사로 김 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 개최 문제 등을 논의했고, 6자회담 성과로 2·13 합의가 도출된 후 생긴 ‘해빙’(解氷)기에 김만복 국정원장이 평양을 찾아 남북정상회담의 길을 닦았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을 거쳐 합의한 8개 항의 합의문에 남북 교류·협력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담았다. ‘종전선언-평화체제’로의 지향점을 밝히기도 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