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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문제 해결 안되면 일정 난항"…회담 날짜 놓고 거래하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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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얼굴을 마주대고 앉은 시간은 모두 89분이다.

올해 들어 네 차례 열린 고위급회담 중 가장 짧다. 이날 회담은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시작해 전체회의(70분)과 두 차례의 대표접촉(각각 9분과 1분), 종료회의(9분)을 거쳐 오후1시35분에 끝났다. 속전속결이다. 1월9일 첫 고위급회담이 모두 여덟 차례의 접촉을 통해 267분간 진행됐던 것과 대비된다. 6월1일 열렸던 3차 고위급회담도 7차례의 접촉 끝에 오후 5시41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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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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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위급회담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준비에 초점을 뒀다는 점에서 3월29일 열렸던 세 번째 고위급회담과 대비된다. 3월29일 고위급 회담에도 조 장관과 이 위원장이 나섰고, 회담은 모두 91분간 진행된 후 오후2시13분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그러나 3월 회담과 이번 고위급 회담은 속전속결이라는 점 외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3월 회담은 4월27일이라는 정상회담 날짜를 공개했지만 13일 고위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은 “9월 안”이라는 애매한 문구로 마무리됐다. 지난 4ㆍ27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에서 적시된 “문재인 대통령은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에서 ‘가을’을 ‘9월’로 바꿨을 뿐이다. 북측과 구체적인 날짜를 공개할 정도의 수준의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다.

분위기도 달랐다. 3월29일 고위급 회담에선 남북 모두 “시종일관 진지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조 장관) “마음과 뜻을 맞추고 노력과 힘을 합쳤다”(이 위원장)며 화기애애함을 과시했다. 13일 회담은 달랐다. 시작은 “북과 남, 남북이 이제 막역지우가 됐다”(이 위원장)는 덕담이 오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뼈가 있는 발언이 오갔다. 언중유골 발언은 주로 북측 이선권 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종결회의 모두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위원장=“북남(남북)회담과 개별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 장관=“이 위원장이 제기한 것, 우리 측이 제기한 것도 함께 풀어나가면 상대방이 우려하는 것들을 다 떨치면서 좋은 전망을 성과로서 제기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이 이날 제기했다는 ‘문제’는 그가 대동하고 나온 대표단 면면을 보면 예측 가능하다. 이 위원장은 김윤혁 철도성 부상(차관급)과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나왔다.

철도ㆍ도로 등 남북 경제협력 분야 담당자들이다. 남측 정부가 대북 제재에 묶여 남북 경협에 적극적이지 못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회담에 앞서 남측 정부에 대해 “대북 제재에 편승해 철도ㆍ도로 협력 사업에서도 ‘돈 안 드는 일’만 하겠다는 심산”(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12일자) “왜 대북제재라는 족쇄에 두 손과 두 발을 들이밀고 남북관계까지 얽어매느냐”(7월31일 노동신문)라며 대남 압박 강도를 높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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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13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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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13일 회담을 마친 뒤 남측 기자들이 대북 제재에 대해 묻자 “대북 제재를 거론하는 남측에 물어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앞서 오전 전체회의에서도 조 장관이 “북측에 ‘한 배를 타면 한 마음이 된다’는 속담이 있는 걸로 안다”고 덕담을 건네자 뼈가 있는 답변을 했다. 그는 “한 배를 타면 운명을 같이 한다는 거다. 마음보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도 같이 한다”며 “관계 개선을 하면 민족의 전도가 열리고 악화되면 불운해진다”고 응수하면서다. 남측에 대해 운명 공동체가 되지 못했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 위원장은 13일에도 회담을 기자들에게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 1월 고위급회담부터 지속적으로 이 위원장이 요구해온 사안이다. 이날도 이 위원장은 “골뱅이 갑(껍데기)속에 들어가서 하는 것처럼 제한되게 하지말고 투명하게 공정하게 알려질 수 있게 회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이 “제가 수줍음이 많아서 (중략) 말주변이 이 단장님보다 많이 못하다”며 에둘러 사양하자 이 위원장은 “성격과 말주변 문제가 아니다”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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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했다. 접견장에 먼저 도착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이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과 귓속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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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달변가이자 다변가로 알려져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남측을 방문한 이 위원장과 같은 만찬 테이블에 앉았던 한 여권 관계자는 “문학적인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달변가”라며 “이 위원장 입장에선 회담을 공개해 주도권을 쥐는 모양새를 과시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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