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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디지털스토리] "한달 점심값만 30만원 써요" 외식 외면하는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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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물가 1년간 최대 10% 상승, 주52시간 도입…직장인 점심 문화 변화 조짐

미·일 등 해외선 도시락 일반적…한국서도 외식 기피 움직임

최저임금·임대료 상승에 가격 올렸지만…줄어드는 손님에 자영업자도 '울상'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이지성 인턴기자 = "물가가 너무 올라서 점심에 회사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 보통 1만5천원씩 나와요. 동료들과 함께 비싼 식당에 가는 날에는 2만원씩 깨지니까 아무래도 부담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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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모(32) 씨는 요즘 외식을 점차 줄이고 있다. 김 씨는 "점심 밥값으로 월평균 30만원 가까이 나온다"며 "돈을 아끼고 싶어서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샌드위치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먹거리 물가가 급격히 치솟고, 주 52시간으로 점심시간이 짧아지면서 직장인의 점심 풍경도 바뀌고 있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외식보다는 구내식당, 편의점 등으로 직장인이 발길을 돌리면서 자영업자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점심값도 부담스럽고, 시간도 아까워요"

실제 이런 분석에 걸맞은 움직임도 포착된다. 직장인 유 모(26) 씨는 "식당에서 먹으면 1만원 가까이 쓰지만, 구내식당과 도시락으로 해결하면 5천원이면 된다"며 "커피도 잘 안 마셔 한 달 점심값으로 10만원 정도 지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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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물가는 가파른 오름세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7월 냉면과 비빔밥, 삼겹살 등 서민들이 주로 찾는 외식 메뉴 가격이 서울 지역의 경우 1년 새 최대 10%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 외식 메뉴 8개 가운데 7개 가격이 지난 1년간 올랐고 1개만 변동이 없었다.

이러한 지표는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직장인 점심값은 평균 6천230원으로 지난해 동일 조사결과(6천100원) 대비 2.1% 높은 수준이었다. '회사 근처 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의 점심값이 평균 7천200원으로 가장 높았고, 직접 도시락을 싸는 경우 점심값은 평균 4천890원으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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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아낀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업무에 좀 더 몰입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종각에서 만난 직장인 이 모(30) 씨는 "식당에서 기다리고, 대화하고, 커피 마시면 밥 먹는데 1시간을 다 쓴다"며 "혼자 먹으면 15분밖에 안 걸리니까 특별한 회식이 아니면 혼자 먹고 나머지는 휴식 시간으로 쓴다"고 말했다.

◇ 외국에서는 '외식'보다는 '도시락' 선호

그동안 한국의 직장인 점심 문화는 '개인'보다는 주로 '집단'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도시락문화 비교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물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은 음식을 여럿이 나눠 먹는 문화가 있으며, 개인의 선택보다는 집단의 동질성을 더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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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점차 변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달 직장인 3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에서 밥을 혼자 먹는다고 응답한 직원은 25.4%로 조사됐다. 이는 2015년 시행된 조사(11.49%)와 비교해 13.9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외국에서는 직장인들이 점심때 외식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김광수 코트라 일본 도쿄 무역관은 '일본 직장인들의 신(新) 점심 풍속, 사내 도시락' 보고서에서 "일본에서는 외식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풍속이 변화됐다"며 "이런 현상은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면서 더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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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점심을 때우는 직장인이 10명 중 4명에 달한다. 미국의 인력컨설팅 업체인 맨파워그룹이 북미 지역 직장인 1천 명으로 대상으로 2012년 점심시간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이에 사무실 책상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알 데스코(Al desko)'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영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영국 웨스트필드 건강재단의 조사결과, 영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55%)이 사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응답했다. 점심 휴식을 하기에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62%)고 답변했다.

◇"자영업자 타격 입을 것"…미국에서도 외식업계 위축돼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외식 값이 오르고 점심시간이 짧아지면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권 모(48) 씨는 올해보다 내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권 씨는 "현재는 손님 수도 작년과 비슷하고 눈에 띄는 매출 변화는 없다"면서도 "올해에 이어 내년에 물가와 최저임금이 또 오르면 음식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점심 가격이 비싸지면 손님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점심시간에 외식하는 직장인이 감소하며 외식산업이 침체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기관 NPD 그룹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배달음식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2016년 전체 레스토랑 사업에서 32억달러(약 3조5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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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미국 직장인 책상 앞 점심으로 미(美) 외식업계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외식업계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수년간 가격을 인상해왔으며, 2016년 식당 점심의 평균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대비 19.5% 상승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자영업 창업 숫자보다 폐업이 늘고 있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돈이 많이 드니까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면서 식당 가는 게 부담스러우니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음식점들이 생산성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책 '2018 자영업 트렌드'를 보면 일본 직장인들은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지난 25년간 평균 점심값 지출을 20% 가까이 줄여왔고, 음식점들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업체들이 살아남았다. 책 저자는 "일본 사례는 국내 음식점도 가격을 계속 올릴 수 없을 거란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고객 셀프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생산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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